5월의 어느 맑은 날, 영어 수업 이야기.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그날의 3교시,
조별 과제를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조를 짜는데, 랜덤 조 짜기 프로그램을 돌렸고, 4인 1조의 5개의 조가 짠 하고 나타났다.
그 순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싫어요! 절대 안 되어요!'
아이는 그야말로 절규를 했고 교실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했다.
실상은 이러했다.
그 반에는 특수교육대상자 아이가 두 명이 있는데,
A는 유난히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아이이다.
덩치가 크고, 인지가 조금 낮은 편이고, 수업시간에 쿨쿨 잘 자는 아이였다.
3월 한 달 내내 그 아이가 잘 때마다 깨웠는데, 4월이 되니 그 반 아이들이 그 녀석을 깨우지 말자고 얘기했다. 어차피 수업을 전혀 이해 못 하는 아이인데 걔를 깨우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잔 얘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몇 번은 깨우지 않았다. 진도는 급하고 아이는 실컷 깨워놔도 5분 후에 다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수교육대상자 B는 완전 결이 다른 아이였다.
영어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영어시간 과제들을 척척 잘 해냈고, 매번 훌륭한 수업태도로 칭찬을 받았다.
사회성이 떨어져서 친구는 없지만,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닌, 그레이존의 그 아이.
그런데 이 둘이 짝꿍으로 앉아있다 보니, 이 결이 다른 두 아이가 어쩌다 '특수 2인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특수 2인조'가 그 울부짖던 여자아이가 같은 조가 된 것이다.
조별 과제는 수행평가였지만, 조별로 공통으로 받는 점수는 최대 2점에 불과했고, 그것도 조원이 끝내지 못한 경우에는 다른 조원들이 남는 시간에 대략적으로 채워 넣기만 하면 과제에 참여한 조원들은 모두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누차 설명을 했는데도 그 사달이 났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보기 힘들법한 포효에 어안이 벙벙했다. 다시 랜덤 조 짜기 프로그램을 한번 더 돌릴까도 했지만, 그것도 이미 선을 넘었다. 애초에 내가 성적순으로 조를 짜서 줬어야 했었나. 뒤늦은 후회도 해보았지만 이미 예상치도 못했던 사건은 벌어진 후였다.
A가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니라, 그냥 그 반의 불량학생 정도였다면(다른 반에도 그런 아이가 항상 한 두 명은 있다.) 그 여자아이는 그토록 절규하였을까? B가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니라 그냥 반에서 조용하고 친구 없는 정도의 아이였다면 그 여자아이는 그토록 절규하였을까? 나는 그 특수교육대상자라는 프레임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혐오였다.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그 반이 21명이라, 그 조에 한 명을 더 넣는 방법으로 조 구성을 마무리했고, 그렇게 4차시에 걸친 조별 프로젝트가 시작이 되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템플릿을 공유해서 각자 슬라이드 작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문제의 여자아이는 A에게 말은커녕 눈빛조차 섞지 않으려고 했다. 실로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영어성적이 좋은 B는 그래도 조별 과제에 참여해 보려는 의지를 보였고, 조원들과 의견도 나누며 또 가끔은 A를 도우며 조별 활동을 해나갔다. A가 과제를 해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내가 그 아이를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고, B가 A를 종종 돕기도 했다.
사건의 다음날,
그 반 반장을 복도에서 만났는데, 반장은 그 여자아이가 원래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그렇게 난리를 치는 것은 그런 아이이니 나에게 너무 맘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걱정되었던 부분은, A와 B가 그 난리통에 받았을 상처인데, 정말 훌륭한 학생인 그 반 반장도 A와 B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 반 담임에게 수업 중 이런 일이 있었다는 설명을 했더니 대뜸 나에게 '조별 과제에 걔네를 왜 넣었냐'라고 할 정도였으니, 특교자에 대한 감수성이 이 정도라는 사실에 기가 막혀서 혀를 내둘렀다. 내가 특수교육대상자 아이의 엄마라서 그 아이들의 감정에 과몰입한 건가? 조 과제에 애초에 그들을 뺐어야 했다고? 도대체 통합교육이란 무엇인가. 할만한 과제였기에 특수교육대상자 아이들도 포함시켰고, 내가 기꺼이 도울 준비가 되었기에 스스럼없이 시작했으며, 다른 반에도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지만 통합교육의 목적대로 조 아이들이 조금씩 도와주며 충분히 과제를 해 나가고 있었다.
삶이 언제나 그렇듯, 어떤 주변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경험이 달라지는데, 특수교육대상자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 맞닿들였을때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니 얼마나 억울할지 감히 상상이 안 간다. 그런 변수를 줄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에 특교자의 부모는 '진상부모'라는 공식이 생긴 게 아닌가, 그런 씁쓸한 생각이 든다.
특수선생님께 이 사건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예상대로 A와 B는 매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A는 교실에서는 무덤덤해 보였지만, 특수 선생님께 얘기할 땐 그 여자아이에 대해 몹시 분노를 했고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싫어졌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B는 완전통합학생이라 특수선생님과 대화 나눌 기회가 없었지만, 반장말로는 그 사건 이후 자꾸만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얘기했다.
아, 그 사건의 여자아이에겐 사건 당일 수업 끝나고 바로 얘기를 나눴는데, 조가 5명이 되어서 이젠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그렇게 금방 아무렇지도 않아 진 그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너의 그 행동으로 A와 B가 상처받았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단 얘기를 깜빡했다. 내일 수업 때 꼭 얘기해줘야지.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또 종종 벌어지겠지. 어떤 대처가 가장 현명할까.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본질에 맞게 설명하고 교육할까. 내 교직생활에, 내 특수교육대상자 아들의 양육생활의 최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