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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거 엄마 욕심이야

그래서 앞으론

by 메이

오늘은 세상이가 지역 발명영재 시험을 보러 갔다. 그리고 나는 그 덕에, 인근 스타벅스에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오늘 세상이의 컨디션은 사실상 발명영재 시험을 볼 상황이 아니었다. 감기도 독감도 아니다. 어젯밤 아이와 또 한바탕 샤우팅을 했고 그 덕에 11시 반까지 잠을 자지 못했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기 매우 힘들어했는데, 그런 애를 7시 반에 깨워서 밥을 먹이고 입히고 달래서 30분 거리의 시험장으로 달려와 시험장에 넣어버렸으니 말이다.


어제 한바탕 샤우팅을 한 이유는, 그놈의 게임 때문이다. 비교적 통제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친구들이 게임을 많이 해서 본인도 하고 싶다고 조르고 조르다가 점점 통제가 느슨해지고(자꾸 전화해서 친구랑 30분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그러다 보니 점점 절제력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어제 저녁에는 세상이가 영어학원 숙제를 꾸역꾸역 해놓고 게임을 켰는데, 내가 다음날 치를 영재시험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해주겠다고 하니, 그때도 게임에 자꾸 눈을 흘긋흘긋 돌리며 내 설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학교에 근무하면, 게다가 고등학교에 근무하면, 이렇게 게임에 집착하는 아이의 약 7-8년 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또 과하게 감정이입해서 아이를 쥐 잡듯이 잡게 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이성을 놓고 혼을 내는 사람이라, 어제는 또 아이에게 절제를 못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극단적으로 얘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세상이가 갑자기 자기 머리를 팍팍 치면서 '이 한심한 인간!! 멍청한 인간!!'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아뿔싸 했다. 내가 아이에게 그런 프레임을 씌웠구나. 게임을 계속하는 인간 = 한심한 인간 = 멍청한 인간 = 너.



내가 수업하는 반에 1학기 내내 영어책을 가지고 오지 않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집에 책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1학기 내내 단 한 번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아무리 혼이 나도, 그것 때문에 수행평가에 악영향을 미쳐도 눈하나 깜짝 안 하던 그 녀석이, 얼마 전 수업시간에 엄마 전화를 받아야 된다며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급한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유튜브 수익금 받는데 계좌가 꼬여서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그 아이가 유튜브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좀 더 물어보니, 녀석은 15,000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클래시 로얄 게임 유튜버였다. 월 수익 100만 원 정도 번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고 2가 그 정도 수익을 만들고 있다면, 이 녀석은 떠밀리듯 영수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보다 더 미래지향적이다. 그런데 게임 유튜버가 되어 월 수익을 그 정도 낸다고 하면, 이 녀석은 게임을 얼마나 했을까. 그 녀석이 게임 유튜버로 수익을 낸다고 해서 녀석이 영어책을 1학기 내내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적어도 '넌 그런 태도로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살거니!!'라는 잔소리는 그 녀석에게 해당사항이 없다는 거다. 녀석은 어쩌면 나중에 다른 게임에 관심이 생기면 또 분야를 확장해 나가며 자신의 콘텐츠를 제작해 나갈거다. 롱폼보다 쇼츠 수익이 노력 대비 더 좋다며 쇼츠 하나 만드는데 1시간 정도 들이면 수익이 어느 정도 되는 등의 얘기를 해주었다. 순간 녀석이 진짜로 대단해 보였다. 다만 문제는 평생 모범생으로 살았던 내가, 내 아이를 과연 그렇게 자라도록 둘 수 있나, 그게 안된다는 거다. 내 모범생 사전에는 그런 삶은 없다는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집 자녀 양육에 있어서 모든 비극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다시 영재시험 얘기로 돌아가서, 세상이에게 발명영재 분야에 지원을 해보자고 했던 것은, 녀석이 뭐가 굉장히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평소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고 'What if~'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생각을 펼쳐볼 수 있는 수업이 발명영재수업이 아닌가 해서였다. 발명영재수업에서 배운 테크닉을 바탕으로 그 생각들을 미래에 펼쳐볼 수 있자 않을까, 그 정도의 생각에서 지원해 보자고 했고, 아이는 흔쾌히는 아니지만 어쨌든 지원을 하기로 했다. 지원서도 거의 90%는 내가 썼다. 동료교사들에게 이렇게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원래 그거 엄마가 쓰는 거야, 아니면 와이즈만 선생님이 쓰거나'라고 얘기를 해주셔서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그리하여 1차 선발을 통과하고 학교장 추천도 받고 해서 2차 면접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어제 게임 때문에 한바탕 한 다음 '한심한 인간'이 되어버린 세상이를 '발명영재' 시험에 데리고 가야 하는 오늘 아침 내내 나는 마음이 심각하게 불편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를 내 틀 안에 가두려는 통제욕구와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 결괏값은 자신감 없고 자기 의견을 내는데 소극적인 아이로 키웠다는 사실에 환멸감이 들었다. 혹은 우리 둘째 맑음이를 '공부 좀 하는 애'로 키우긴 글렀으니까 첫째라도 좀 그럴싸한 애로 잘 키워야겠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을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모든 것은 하여간 내 욕심에서 비롯하였음을, 그러면서도 내가 내 아이를 위해 이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안 따라 준다고, 나 너무 지친다며, 덤으로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비협조적인 남편에게 투덜거리는 것까지 더해서 우리 가족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그런 회의감에 눈물이 났다.


맞아 엄마 욕심이야.

올 한 해 건강에 이슈 없이 잘 지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아이들에게 자꾸만 뭘 집어넣으려고 강요한다. 게임은 원칙을 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냥 아웃시키면 된다. 애매하게 '친구랑 같이 있을 땐 전화해~' 이런 규정 따윈 만들면 안 되었다. 초4 아이에게 대신 미래에 다녀와서 정확하지도 않은 파멸에 대해 얘기할 필욘 없다.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아이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나의 태도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좀 더 나에게 집중해보려고 한다. 운동에, 글쓰기에, 그리고 나의 지적 성장에. 첫째에 대해선, 꼭 필요한 부분에만 관여한다. 아직은 손이 더 많이 가는 둘째의 발달에 더 집중한다. 첫째는 이제 자율성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나이이다. 내가 꼭두각시 부리듯 하면 아이의 성장을 오히려 막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마치고, 오늘 시험을 치고 나오는 세상이를 꼭 안아준 후 얘기해 줄 거다.


고생 많았어, 엄마가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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