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저력을 믿으며.
10월의 어느 날,
지독히도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기 싫어했던 세상이와 또 실랑이 끝에 또 그곳에 갔다.
4학년인 세상이는 2학년 때 메디키넷으로 시작해 adhd약을 복용 중이다.
2학년 때 1년간 약을 먹었는데, 키가 너무 크지 않아서 잠시 단약을 했다가,
올 초부터 아토목세틴 25mg을 처방받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먹었다고 해서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출장과 병원방문일이 겹쳤는데 내가 남편에게 알려주는 걸 깜빡해서 병원에 못 가는 바람에 15일 정도 강제 단약한 적이 있다. 그때도! 약을 안 먹어서 아이가 너무 산만하고 일상에 지장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아이는 기본세팅값이 산만인가. 그렇긴 하다. 몸을 가만히 못있는다거나, 대화를 할 때 주제가 널뛰기를 하기도 하고, 여전히 그놈의 낄낄빠빠가 안돼서 혼자 상처를 받는 일도 많고, 때론 울기까지도 한다.
지난번 병원 방문 때는 이런 증상들에 대해 도무지 아토목세틴이 도움이 안 되니 다시 메디키넷으로 달라고 요청을 해서 10mg을 받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아토목세틴 25mg 30일 치와 메디키넷 15일 치를 주셨다.
세상이는 아토목세틴을 먹으면 속이 안 좋다고 했다. 3주 전에도 "이 약을 먹었다고 정신이 맑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토할 것 같아!"라며 약 먹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메디키넷을 먹였더니 여전히 토할 것 같고 속이 울렁거린다며 약 먹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는 것도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싫어했다.
그러던 와중 다시 병원 예약일이 다가왔다.
"아이가 산만하긴 합니다만, 약을 먹었다고 도움이 전혀 되는 것 같지 않은데 계속 먹여야 하나요?"
선생님은 약을 바꿔보자고 하셨다.
그렇지만 여전히 8살 때 천근아 교수님께 자폐가 아니라고 결정멘트를 날리시면서 했던 말씀,
"산만하면 로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adhd약을 처방받아 먹일 수 있겠지만 이 아이는 퓨어 adhd가 아니기 때문에 약이 그렇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라고 하셨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 얘기를 지금 다니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어머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단약해도 된다고 하셨다.
응?
결국은 부모 선택이었네?
그렇게 얼렁뚱땅 단약을 하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의 주호소 증상은
- 몸을 자꾸 움직인다
- 친구사이에서 낄낄빠빠를 잘 모른다.
다행히 세상이는 문제행동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 잘 이해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아이이다.
(물론 그걸 반복해야 하긴 한다.)
이제는 아이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어찌 됐건,
세상이와의 지긋지긋했던 정신건강의학과 전쟁은 나의 의지로 끝이 났다.
놀랍게도 찝찝하지가 않다.
나는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학급에서 최소 20% 이상의 아이들이 adhd와 유사한 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진짜로 뇌의 문제가 있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요즘의 디지털 사용실태를 비롯한 일상 자체가 유사 adhd가 되기 딱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 아이 정도의 산만함은, 그냥저냥 괜찮다고 본다. 내 아이가 타고나기를 차분하지 않은 것을, 약으로 고치려고 하면 사람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잘해보자,
너와 나의 새로운 챕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