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시험 감독을 간 이유는

케케묵은 내 열정을 꺼내기 위해

by 메이

방학 때 있는 임용시험 2차 면접 감독을 지원했다. 다른 학교는 감독갈 사람이 없어서 차출을 했다던데, 나는 굳이 자원했다. 사실 임용시험 감독이나 수능 감독이나 큰 보상이 있는 일도 아니고, 실수하면 민원만 생기는 일이다. 그럼에도 임용시험 감독은 기꺼이 간다. 그리고 수험생들을 본다.


수험생들의 긴장된 표정, 잘 해보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모습, 화장실로 안내하는 복도 감독관(바로 나!)에게조차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 — 그 모든 모습이 15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나는 “붙여만 주면 학교 화장실 청소도 다 내가 하겠다”는 각오였다. 임용만 붙으면 세계정복도 할 것 같았다. 우리 반을 우주 최강 반으로 만들겠다고, 현장연구가가 되어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되겠다고, 그런 결의를 품었다. 학원 강사를 하고, 기간제 교사를 거쳐 삼수 끝에 임용에 붙었고, 그것도 차석으로 합격한 뒤의 나는, 얼마나 기뻤고 또 오만했던가.


신규 시절에는 교육제도에도 관심이 많았다. 어불성설인 법이 생기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올리고, 온라인에서도 성토했다. 그 시절의 나는 교실 안의 교육만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까지 바꿔야 아이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유학 준비도 했었고,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자 대학원으로 발을 옮겼다. 대학원에서는 오히려 더 불이 붙었다. 고3 담임을 맡았던 해에는 우리반 학생들과 함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남아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논문을 쓰기도 했다. 교육행정부터 교육철학, 정책 비판과 제도 변천사까지—그때는 그 모든 것이 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터울이 큰 두 아이를 키우고, 내 아이들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예전만큼 열정적으로 교직이나 제도에 일일이 반응하지 못하는 때가 많아졌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때로는 변화가 귀찮고, 하던 대로 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날이 많아졌다. 유치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둘째 생각에 반 아이들과의 상담을 호다닥 마무리하고, 가방을 둘러메고, 칼퇴를 사수하며 뛰어나오는 날도 잦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때의 열정이 그립다. 임용 감독을 하며 수험생들의 얼굴을 보니, 그 뜨거움이 다시금 일렁였다.


그래서 또 다짐한다. 다른 건 몰라도, 학생들을 대할 때만큼은 초심을 잃지 말자고.

그것도 1월에, 새해 시작에, 다짐하기에 딱 좋은 시점에, 임용감독을 와서 다시금 케케묵은 나의 열정을 끄집어낼 계기를 마련해본다. 감독을 가면 일단 입구에서 휴대폰을 제출하므로 디지털 디톡스는 덤이다. 심지어 공짜 점심에 수당까지 받으면서 열정을 끄집어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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