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을 써 본 날

그리고 미래 모습까지.

by 메이


미래 자서전 써보기.

교사작가협회에 가입한 이후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글을 쓰는 것을 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자서전을 써보기 활동을 해보았다. 유년시절부터 초중고를 거쳐 대학생, 30대, 40대, 50대, 그리고 60대 이후의 삶까지.

과거는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는 현재의 감으로, 미래는 내 바람으로 쓴 나의 자서전. 자서전이라고 하기엔 짧은 기록이었지만, 그것은 과거를 둘러보고 현재를 파악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가장 내밀한 고백이었다.


1. 결핍과 오기가 만든 성장의 동력

나의 유년은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같았다. 둘째 딸이라는 이유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남동생이 태어나며 소외감은 깊어졌다. 하지만 그 결핍은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시골 마을의 작은 놀이터 대신 30분을 걸어 나가는 먼 곳을 동경했고,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으로 사교육 없이 전교 1등을 이뤄내기도 했다.

고교 시절, 아빠의 반대로 일본어 전공을 포기하고 '영어교육과'라는 차선책을 택했을 때만 해도 몰랐다. 그것이 인생의 '고점'에 제대로 물려버린 시작이었음을. 하지만 방황 끝에 만난 대학 교수님과 호주 교환학생 시절의 경험은 나에게 '이방인으로 사는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2. 30대, 숨구멍으로서의 '일'

30대는 육아라는 거대한 터널이었다. 독박 육아와 가사, 그리고 발달이 늦은 두 아이를 5년 간격으로 낳고 돌보며 느꼈던 절망감은 나를 우울증의 문턱까지 밀어 넣었다. 그 암흑 같은 시간 속에서 나를 살린 건 역설적이게도 '일'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 교과서와 수능 특강을 집필하며 나는 비로소 숨을 쉬었다. 그것은 성취를 위한 욕심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처절한 '숨구멍'이었다.


3. 40대, 나를 사랑하는 기술을 배우다

40대에 들어선 나는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의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를 곱씹으며 깨닫는다. 행복은 내가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배낭 대신 가족들과 함께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떠난다. 지금의 시련을 글로 적어 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존 지침서(Survival Guide)'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쓴다.


4. 60대 이후,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의 수렴

50대를 지나 정년퇴직을 맞이할 즈음, 나는 비로소 '교사'라는 외투를 벗고 진짜 나만의 수업을 시작할 것이다. 아빠의 반대로 묻어두었던 일본어 실력을 꺼내어 일본 교토의 골목을 누비고, 호주 바닷가에서 와인을 마시며 지난 굴곡을 농담처럼 이야기할 것이다.


발달이 느려 나를 애타게 했던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세상과 소통하며 나의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째가 자립하지 못할지언정 아이가 어릴때처럼 동동거리며 살진 않겠지. 너와 함께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아. 매일 아침 수영과 필라테스로 저축한 '근력 연금'을 바탕으로, 나는 글쓰기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프리랜서가 되어 필요한 곳 어디든 갈 준비를 마칠 것이다.

나의 노년은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수렴해가는, 평온하고 단단한 저점이 될 것이다.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는 감으로, 미래는 바람으로 채운 자서전을 써보니 미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생긴다. 우울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 대며 감정을 토하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30대 중반의 나는 이제 40대가 되어서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누군가의 생존 지침서가 되기 위해. 살아있는 한 뭐든지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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