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이가 친구를 만난 날

나는 심해로 들어간다.

by 메이

맑음이의 자폐적 특성이 많이 옅어졌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제법 말을 하고, 나름의 논리를 갖추었으며, 가족들과 대화할 때는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꽤 괜찮은 궤도에 올랐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지원된 환경'이라는 온실 속에서만 유효했다. 유치원의 특수교사와 실무사님이 계신 울타리, 하원 후 미술학원이나 치료센터,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나와 보내는 시간들. 그 안전한 틀 안에서 아이는 문제없어 보였다. 나와의 소통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견고한 착각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바로, 또래 아이들이 있는 '날 것의 세상'에 던져질 때다.


오늘 맑음이와 짝치료를 하던 아이를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났다. 아이의 사회성을 관찰할 겨를도 없었다. 맑음이는 친구를 보자마자 멀찍이 도망부터 갔다. 한참을 겉돌던 아이는 친구가 솔방울을 모으는 모습을 보더니, 불쑥 다가가 그 솔방울을 훅 떠서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맑음아, 너도 갖고 놀고 싶으면 저기서 모아 와야지."

내 말에 아이는 솔방울이 떨어진 곳으로 가더니, 줍는 대신 다시 여기저기로 던지며 혼자 놀기 시작했다. 결국 그 친구와는 눈 한번,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못했다. 놀이터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그 짧은 길,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꾹꾹 눌러 삼키며 아이를 차에 태웠다.

그때 이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이모가 묻는다. "맑음이 뭐 했어?" 아이가 해맑게 대답했다. "놀이터에서 친구랑 놀았어."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 곁에 있었으니 너에겐 그게 친구랑 논 거였구나.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이토록 다르구나.


자폐성 장애의 진단 기준을 다시금 떠올린다.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의 어려움'. 눈맞춤과 표정이 어색하고, 대화가 일방적이며, 또래와 관계 맺기가 어려운 것. '상대방의 마음 읽기'가 안 되는 것. 교과서에 적힌 그 건조한 문장들이 맑음이의 행동 하나하나와 뼈아프게 겹쳐졌다.

'제한적 관심사'도 맑음이의 뚜렷한 특징이다. 태국 여행 이후 아이는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얼마나 걸리냐"에 꽂혀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착적으로 묻는 질문들. 감각적 예민함은 줄었을지 몰라도, 관계의 장벽은 여전히 높고 견고하다.


선배 자폐 아이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더 이상 사회성 치료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 잘하는 걸 키워줘." 그 말을 들을 땐 조금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내 고집이 순진한 투정처럼 느껴진다. 치료실 안에서의 사회성이 과연 진짜 세상에서도 통할까? 하지만 고작 일곱 살인 아이를 두고 벌써 '포기'를 논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또다시 혼란의 늪에 빠진다.


남편이 서울대병원에서 김붕년 교수님의 초진 기록지를 떼왔다. 거기엔 짧고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장애 등록 필요해 보임.' 2년 전 그 말씀을 들었을 땐, 아이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내린 성급한 판단이라며 애써 부정했다. 우리 아이는 좋아지고 있다고,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명의는 괜히 명의가 아니었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 맑음이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우리는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


어쨌든 맑음이 친구를 만나고 온 날은 늘 진이 빠진다. 내가 또 굴을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차라리 아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맑음이는 최소한의 눈치가 있다. 학교에 가서 모둠 활동을 하다가 뜬금없는 행동으로 아이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게 된다면, 거절당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너는 더 이상 맑게 웃을 수 없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미칠 것만 같다. 너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는데.


보통의 아이를 키워도 부모의 감정은 널을 뛴다는데,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감정은 파도가 아니라 해일이다. 친구를 만나고 온 날, 나는 그냥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탐사 불가능한 심해까지 가라앉는다. 그런 날이다. 그런 날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일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묵묵히 아이의 등원 가방을 챙기고, 치료실을 오가며 또 새로운 하루를 전략적으로 살아낼 것이다. 어제 쓴 나의 자서전 마지막 문장처럼.

살아있는 한,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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