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둘째의 5번째 감통수업과 첫째의 짝수업
남편과 지방 갔다 올라오는 길에 아이들은 차에서 자고 나는 남편에게 시덥잖은 얘기들을 조잘거리다가
문득 "둘째에 대해 심각한 이야기를 피하고 있지만, 둘쨰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속에 돌이 있는 것 같아."라고 얘기를 꺼냈다.
남편은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우리는 둘째에게 자폐라는 진단이 떨어져도 놀라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해나가자는 얘기를 했다.
사실 남편이 괜찮을거라고 얘기해주길 바랬다.
내 걱정이 지나치다고. 아이는 첫째 처럼 잘 클거니까 그냥 치료받으면서 기다려보자고 얘기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둘째의 행동의 시그널들이 애매함 없이 흔히 어느 책에서 나오는 자폐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의 항목들을 모두 100%충족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성 결여와 무발화.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듯, 남편도 둘째아이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면,
심장이 쿵 내려앉을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이제 2돌이니, 화이팅 해봐야 되지 않겠나.
그리고 그 여정이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니 앞날이 막막한 것은 사실이었다.
치료비용이 만만찮은 것은 말해봤자 입아프고
우리 둘다 멀쩡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첫째는 이제 초등학교에 가는데,
학습에 신경을 써줘야 할 시기인데,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올해 맡은 프로젝트도 할일이 산더미인데
나는 숨을 쉴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번 치료는 남편이 둘째를 데리고 갔다.
지난 치료수업때는 상담때 물을 뒤집어쓴 해프닝때문에 내가 너무나 화가 나 있었는데,
이번엔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와서는, 바깥놀이를 많이 하래 등등 이러쿵 저러쿵 하는 남편을 보며
올해 3월 1일자 휴직을 하고 아이와 더 잘 치료를 다닐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남편이 둘째를 데리고 감통수업을 간 사이에
나는 첫째를 데리고 짝수업을 갔다.
짝수업 하는 아이의 엄마는 문득 우리아이는 도대체 왜 치료를 받는지 모르겠다고.
아무리봐도 멀쩡한 앤데, 왜 그러냐고.
나는 "잘 보면 소셜 스킬이 부족한게 많아요"라고 대답했지만
이 엄마는 아니 저정도면 평균이지 뭘 그러냐. 우리 애가 저만큼만 되면 치료 안다닌다. 하셨다.
우리도 진심으로 짝치료따위는 그만다니고 싶지만, 짝치료 담당 선생님은 그리고 세브란스 교수님은 짝치료를 강력권고 하셨고, 우리는 부모된 책임으로 전문가가 한 말대로 부지런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과 나는 송도에서 그렇게, 두 아이를 각자 맡아 치료실에 가 있었다.
사실 작년에도 죽을동말동했다.
남편과의 갈등과, 혼자 갓 돌지는 둘째와 7살 첫째를 케어하며 복직했던 나는,
그렇게 한해를 살아냈다.
나의 인생에서 36세는,
나의 바닥까지 내려갔던, 매일매일 내 인성의 바닥을 여실히 보았던 그런 한해였다.
그 와중에도 미친듯이 발버둥 쳤다.
이것 저것 해내려고 노력했고,
그래, 실제로 해나기도 했다.
우는 날이 더 많았지만 웃는 날도 있었고, 매일 더 힘내보려고 노력했다.
올해도 어떻게 살아낼지 모르겠지만
작년의 부부갈등을 뒤로한 채 휴직을 하기로 한 남편과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들과
이제 치료를 하며 발달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두돌 아기 둘째,
그리고 매일 매일 할일이 산더미 같은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잘 살아 내는 것에 목표를 두겠다.
거창하게 2022년도 아니다,
그저, 나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나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