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둘 엄마가 우아해지려면

아니, 우아해 보이려면...

by 메이


머릿속은 전쟁이지만 일상은 그럭저럭 살아내는 중.



직장에서 동료들은 가끔 나에게 "아들 둘 엄마처럼 안 보인다"라고 칭찬한다.

그것이 칭찬인 이유는,

아들 둘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은 보통 정신없고 우악스럽고 소리를 꽥꽥 지르며 나사가 하나는 풀려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정말로 정신없고 우악스럽고 소리도 꽥꽥 지르며 나사가 서너 개는 풀려있는 사람이지만,

출근 전날 어떤 옷을 입을지 미리 생각해두고, 출근하는 운전길에 신호가 걸릴 때마다 그나마 화장을 하며,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해결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정말로 물 위의 오리처럼 멀리서 보면 잔잔해 보일지 몰라도(우리 부서 사람들처럼 가까이서 나를 매일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사실은 물 밑으로 미친 듯이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다.


잠들기 전 다음날 하루 일과를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한 번 상기해보고, 틈이 생기면 1주일 치 해야 할 일을 다이어리에 정리를 하지만, 그렇게 해도 언제나 구멍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매번 실수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견디기 힘들어했을 것이다.



집안일

아이들과 할 일

직장에서 해야 할 일

내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

읽을 책

구매해야 할 물건들

당장 내일 아침에 아이들 뭐 먹일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매번 리스트를 작성한다. 그리고 잘 해낸 일은 빨간 펜으로 두줄긋기 하면서 마무리한다.





아이들과의 놀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로.



첫째가 더 어릴 때는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아이와 할만한 활동 사진들을 보며 많이 따라 해 보았다.

아직도 잊지 못할 활동은 놀이매트를 깔아놓고 스케치북에 풀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에 색 모래를 뿌린 후 털어내면 짜잔~ 멋진 모래그림이 완성되는 활동이었다.


부랴부랴 퇴근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집으로 와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놀이매트를 깔아놓고 준비물을 세팅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풀을 세게 줄어들고 허공에 대고 쫙 짜는데, 나는 그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스케치북에 그리는거야" 하고 애써 차분히 설명했지만 아이는 관심이 없고 그냥 풀을 만지고 끈적끈적한 촉감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70% 화가 났지만, 아이 손에 있던 풀을 빼앗아서 내가 밑그림을 대충 그리고 색모래를 꺼내 들었다. "자~ 이제 스케치북 위에 색모래를 뿌려보자!"라는 찰나 아이는 색모래 뚜껑을 열어서 또 허공에 뿌렸고, 놀이매트 밖으로 색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100%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아이를 때리고 말았다.


딴에는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 오랜만에 가고는 싶고 마침 무민 전시회를 하고 있으니 아이도 좋아할 거라는 얄팍한 심보로 아이가 3살 때 예술의 전당에 둘이서 갔다가 무민에는 관심 없고 계속 징징대고 급기야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를 보고 나도 전시회장 한가운데에서 펑펑 울어버리고 만 일도 잊을 수 없는 부끄러운 기억이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는 활동을 하자고 한 적도 없는데 나 혼자 신나게 세팅해놓고 나의 의도대로 아이가 따라오지 않으면, 혼자 화내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 어린아이에게 학습지도시켜보았지만 아이는 5살때 까지도 펜 잡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몇 년이 지나자 나는 아이와 하는 활동을 소개하는 소셜미디어 페이지들을 차단했고, 그냥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도록 놔두게 되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는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해서 7살인 지금은 시간만 나면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가끔은 그 창의성에 감탄을 하게 하기도 하고, 레고를 완성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앉아 있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풀을 쫙 짜서 만지는 것은 당연히 재밌을 수 있고 그 특이한 촉감을 아이는 즐기는 것뿐이었고, 색모래도 허공에 뿌려 놀이매트 밖으로 다 튀어나갔지만 청소기 몇 번 슥슥 밀면 될 일인데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내 그릇이 간장종지 만해서 아이의 돌발행동을 담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둘째에게는 그렇게 애쓰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할 여유가 없기도 하고 내 그릇이 얼마나 작은 지를 파악해서이지만, 그렇게 애쓰고 난리를 치지 않아도 아이는 아이 나름의 속도로 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물놀이, 비눗방울 놀이 정도는 첫째와 둘째를 같이 하도록 하고(욕실에서 물놀이를 매일 같이 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나이차가 커도 성별이 같아서 좋은 점) 퇴근 후 두 아이를 픽업한 후 아파트 놀이터에 데리고 가서 풀어놓는 정도의 노력은 한다. 두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가서 오늘 저녁에 먹을 식재료를 고르는 일도 가끔 하지만 어디 돈 내고 가야 하는 전시회에도 일부러 데리고 가지 않는다. 동네에 문화 예술 행사가 있다면 우연히 지나가다 들러서 볼 수야 있겠지만 애써서 멀리 가지는 않는다.



아들들만 그렇겠냐마는,

아이들은 그냥 꼭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고, 사랑한다고, 너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발버둥 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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