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원래 늦되요. (feat.나의 복직과 언어지연)

그런데 저 집 아들은 어찌 저리 빠른가요?

by 메이

첫째 아들은 언어발달이 늦었다.


40주를 꽉 채우고 세상에 나온 첫째는 다른 아이와 비슷한 속도로 대근육 소근육 발달이 이루어졌다.

뒤집고, 기고, 앉고, 서고, 걷고, 그런 것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옹알이도 하고 엄마 아빠도 하던 것이, 생후 13개월 무렵 내가 복직을 할 즈음 멈추어 버렸다.


대학병원에 소아정신과에 대기를 걸었는데 몇 달을 기다려야 해서 우선 인근 아동발달센터를 갔더니 이 아이는 자폐일 가능성이 크단다. 지금 엄마가 일을 할게 아니라 집에 아이와 딱 붙어서 일대일 상호작용을 해줘야 애가 정상발달을 할 거란다. 이게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인가.

펑펑 울면서 집으로 온 나는, 이제 막 복직을 했는데 다시 휴직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육아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휴직의 삶이 나에겐 더 힘들었기에,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단 말을 철저히 믿었기에) 두 돌 무렵부터 집으로 언어치료 선생님을 모셔서 아이의 언어촉진을 시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병원 예약된 날이 왔고, 교수님은 또 역시 나의 복직을 비난했다. 아니 아이가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복직을 했냐. 어린이집 보내지 말고 집에 딱 붙어서 아이와 상호작용 해라.

몇 달 전 들었던 말을 여기서 또 듣게 될 줄이야.


교수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국의 어린이집 0세 반은 폐쇄되어야 맞죠! 왜 제 복직을 탓하나요..

제가 아이를 방치한 것도 아니고, 나만 생각하며 살던 지난 30년을 뒤로한 채 얼마나 희생이라는 걸 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저를 비난하시나요. (그리고 아빠는 왜 비난 안 하시나요.)


어린이집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을 드렸더니 대수롭지 않게 돌아오는 대답은 "원래 아들들은 늦되요. 너무 맘 쓰지 말고 기다려보세요.”였다. 딸 둘 아들 하나를 키워보신 친정엄마도 같은 얘기를 했다. "니 남동생도 그랬어."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우리 첫째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호명 반응(이름을 불렀을 때 쳐다보는 것)이나 눈 맞춤의 질이 다른 아이와 비교해 현저히 떨어졌고 하나의 사물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는 경향에 있었고, 다른 사람이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아가였다.


진짜 우리 아이는 자폐일까.

왜 평범하게 열심히 일하며 아이도 돌보고 하는 워킹맘으로서의 삶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걸까.

왜 맨날 센터를 들락거리며 허구한 날 아이는 정상 출산으로 태어났고, 출생 시 몇 킬로였고, 몇 개월에 걸었고, 엄마 아빠는 정상 발달했었고 등등을 체크하며 우리 아이에 대한 평가와 치료를 기다려야만 할까. 저 집은 나보다 훨씬 육아에 열심인 것 같지 않은데 저렇게 잘 크는데 왜 우리 아이만 이런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걱정이 폭발할 즈음,

나는 학교를 옮겼고, 옮긴 학교는 나에게 고3 담임이라는 직책을 주었다.

우리 아이는 이제 18개월. 그런 나에게 대입을 책임져야 할 25명의 아이가 또 생긴 것이다.

책임감만 많았던 나는 학교에서도 피폐했고 집에서도 피폐했다.

포동포동 건강했던 나는 몰라보게 살이 빠졌고 건강도 나빠져서 수액의 힘으로 출근할 때도 종종 생겼다.


그렇게 태풍의 눈 같았던 한 해가 가고 겨울 방학이 왔고, 우리 가족은 푸껫으로 휴가를 떠났다.

온전히 가족만의 10박 11일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 첫째 아들은, 28개월이 되던 무렵, 거기서 말이 트였다.

갑자기 문장으로 얘기했고, 로보카 폴리 노래를 완창 했다.


너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가족과의 온전한 시간이었구나.



그렇다고 아이에 대한 고민이 다 해결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눈 맞춤이 잘 안되었고, 감각에 예민했고, 특이한 것에 집착했고, 사회성이 떨어져 보였다.


4살이 되던 해에는 놀이치료도 꾸준히 다녔고,

(주차장이 매우 협소했던 그 센터는, 초보운전이던 나에게 초인적인 주차의 능력을 심어주었던 곳이다.)

집에서도 적절한 자극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다.

퇴근 후 일주일에 세 번은 친구를 초대했고,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5살(45개월)에는 대변 기저귀를 뗐다. 소변 기저귀는 또래와 비슷하게 뗐지만 감각이 예민했던 아들은 변기에 엉덩이다 닿는 게 그토록 싫었다. 장염에 걸린 줄도 모르고 외출했다가 기저귀가 없다고 얘기를 하자 진짜 급박한 상황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얼떨결에 변기에 앉아 대변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이후 변기가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서서히 대변 기저귀를 떼게 되었다.


6살에는 동생이 태어났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에게, 그리고 양가 부모님 멀리 떨어져 복작복작 대가족 분위기를 분기별로 가끔 느끼는 아이를 위해, 그리고 한평생 일할 워킹맘 자녀이기에 동생을 낳겠다고 매번 결심했지만 잘 생기지 않았는데, 휴직을 하면서 아이가 생겼다.


그렇게 첫째는 형아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운필력이 약했던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1년 걸려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지적 장애는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수 개념이 약했던 아이에게 넘버 블록스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수 개념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7살이 된 첫째는,

폭풍 같던(내 기준에서) 영유아기를 지나, 마지막 영유아 검진까지 정상 발달로 완료하고, 현재는 그저 또래를 좋아하고 또래와 비슷한 인지를 가지고,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과몰입 하지만 그게 이상하리만큼은 아닌, 그냥 평범한 7세의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 첫째를 보면

아이가 어릴 때 안절부절못했던 내 모습,

아이를 사랑의 시선으로 보지 못하고 아이의 이상 행동을 관찰하려들고 그것을 고치려고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울컥 난다.


아들이 일반적으로 늦되다기보다는,

아이는 유전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영향을 받아

나름의 속도대로 성장할 뿐이라는 것.


그때도 많은 육아서에서 읽었던 내용이지만,

지나고 보니

정말 그렇다.


아이는 앞으로도 자신의 속도로 크겠지.

나는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도움이 필요할 때 적절히 손을 빌려줄 뿐.


그리고 어릴 때 충분히 주지 못했던 애정의 눈빛과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더 해주기로 했다.

꽃에 물을 주듯 아이에게 표현하는 사랑을 더 주기로 했다.

아이는 그 사랑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겠지. 이제 내가 손 쓸 수 없는 세계로 나아가겠지. 아이의 성장을 격하게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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