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by 메이

사립초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지만 아이는 결국 집 앞 공립초에 다니게 되었고,

사립초에 떨어졌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 있던 시간을 지나 입학식이 다가왔다.


아이의 1학년을 맞이하여 남편은 휴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빴다.

일개미처럼 찾아서 내 일을 하기 바빴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느라 바빴다.

아침에 울고 매달리는 둘째를 안아주고 등원시키느라 바빴다.


그리고는 급기야 둘째를 데리고 나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휴직 1일 차를 맞이한 남편과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말았다.

징징거리는 아이에 스트레스받고 있는 나를 보며

집 앞 문에 놓인 쿠팡 택배들을 발로 차며 화를 내는 그에게

나는 미쳤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남편도 지지 않고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린 둘째는 그 소리에 놀라서 엉엉 울었다.

집 안에 있던 첫째는 그 소리를 온전히 듣고 있었다.

입학식 날에.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첫째를 데리고 남편과 등교를 시켰다.

첫째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난만하게 학교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교문에서 배웅한 후 나는 출근을 하고 남편은 아이의 하교까지 책임졌다.



나는 오늘 이상한 집의 허접한 엄마가 된 느낌이었다.

매일 바쁘지만

매일 숨 막히지만

매일 초단위로 계획하고 일하지만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되려 욕이나 먹는다.

나는 출근길 차 안에서 다급하게 화장을 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친한 선생님이

남편이 휴직했을 때 일부러 새벽같이 나오고 늦게 퇴근했다며 복수할 절호의 기회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염려스러웠다.

몹쓸 책임감에 나는 또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퇴근해서 오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플가게에 갔다고 했다.

또 나는 그 와중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고 저녁밥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한심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


하지만 이내 아이들이 돌아왔고

종일 엄마가 보고 싶었을 아이들을 꼭 안아주자

슬펐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힘이 조금 났다.


수학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첫째를 잘 설득해서 보내고

둘째를 목욕시키려고 하자 남편은 골프장에 가보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학교에서 받아온 김밥 한 줄을 우걱우걱 먹으며 저녁은 스킵했다.

7시가 다되어서 수학학원에서 돌아온 첫째와 내일 학습 준비물을 챙기느라 분주했고,

8시가 되자 첫째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급히 훈제오리고기를 볶아 저녁을 먹인 후 아이들을 재웠다.


입학식이라 케이크도 사주고

치킨도 먹으면서 근사한 축하를 해주고 싶었는데

우리의 입학식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오늘을 기록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은 참으로 아쉬운 하루였기에.

기록하고, 잊지 않고, 더 나아지려고 애써야지.


잘 버텨보자 3월.

힘 내보자.

그리고 조금만 더 꾹 참아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나아지길 기원해보자

허접한 엄마가 아니기 위해 노력하자.

그렇게,

그렇게 내일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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