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뼈가 안 부러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은 골프 가고 없던 휴일 오전,
아들 둘 데리고 동네 키즈카페를 갔다.
작은 아이를 데리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데 발가락이 삐끗했다.
좀 아팠지만 괜찮겠지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새까만 멍이 올라온다.
위층 언니가 이거 부러지지 않았으면 이렇게 멍이 들 수 없으니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남편이 돌아오고 나는 아이 둘을 맡기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요래조래 찍으시더니 골절이라고 하신다.
그러고는 깁스를 했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겠다고 조금 걷는데
깁스를 하지 않았을 때 보다 훨씬 아프고 걷기 힘들다.
한 달은 이렇게 있어야 된단다.
안 그래도 어지간히 힘든데 어쩌자고 발가락 뼈까지 부러진 거야.
내일 출근은 또 어떻게 하지.
환장할 일이다.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앉았다.
낮잠을 자지 않았던 둘째는 저녁도 거른 채 쿨쿨 자고 있었고,
나는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남편에게 밥을 해달라고 했다.
아 발가락 뼈가 안 부러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키즈카페에서 그 미끄럼틀을 안 탔더라면,
아니 키즈카페를 안 갔더라면,
아니, 남편이 골프를 안 갔더라면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내 사고방식은 항상 이런 식이 구나.
항상 부정적이고 자기 연민적이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열심히 접하고 있는 지나영 교수님의 감사 요법이 생각났다.
그나마 남편이 휴직 중일 때 다쳐서 다행이야.
그나마 남편이 지방에 가지 않았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나마 위층 언니가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알려줬으니 다행이다.
그나마 둘째가 쿨쿨 자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나마 왼쪽 발가락이라서 운전은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나마 움직임이 덜한 새끼발가락이라 다행이다.
그나마 남편이 군말 없이 밥도 해주고 첫째도 씻겨주고 문 연 약국을 수소문해 진통제까지 구해왔으니 고마운 일이다.
덤덤하게 앉아서 남편에게 탄산수 가져와라 이것 좀 치워라 저것 좀 해라 명령을 날리던 나는
문득 군말 없이 해내고 있는 남편이 사랑스러워졌다.
그리고 내일은 출근이야 뭐 어떻게든 될 것이고
수업 끝나면 병 조퇴 쓰고 뽀르르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지난주에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진짜 진짜 열심히 살았었으니까,
발가락이 부러진 덕에 좀 휴식 좀 취하도록 해야겠다.
발가락이 부러진 건 잘된 일 까진 아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