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까지 그 무례함을 견뎌야 하는가.

네, 아들 둘인데요.

by 메이

둘째가 백일이 되었을 무렵,

가족끼리 대형 카페에 갔다가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가 대뜸 나에게

"아들 둘이냐, 딸이 있어야 한다, 애 하나 더 낳아라"라고 하셨다.

나는 진심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양가 부모님이 멀리 계시고

둘째가 안생겨서 난임 치료까지 받으며 낳은 둘째인데,

댁은 도대체 누구신데,

내가 아들이 둘이라는 이유로 애 하나 더 낳으라구요?


그 날은 정말로 화가 많이 났다.

남편은 왜 모르는 사람이 그냥 한 소리인데 화를 내냐고 했다.

하지만 그 무례함은 마치 성희롱발언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수위의 분노를 자아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그냥 나에게 아들 둘이 생긴건데, 왜 그런 무례한 소리를 들어야하지?

하지만 그 날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날 이후, 그런 비슷한 경험은 숱하게 많았다.


오늘은 동네 생협에 애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는데

캐셔 아주머니가 우리 아이들을 보더니 또 대뜸 "셋째 계획은 없어요?"란다.

그 무례함이란...

또 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네!! 하고 외치고 계산하고 나와버렸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에게 아들이 없었을때

나는 아들 둘을 가진 부모를 보면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뛰어다니는 아들 둘 뒤에 지친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참 안됐다, 참 복도 없다,

뭐 그런 류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왜 나는 왜 아들 둘 엄마가 될 거란 생각을 못했는지...

그리고 최근에 셋째 마저 아들을 출산한 동료 선생님을 보며

아이쿠 어쩌나... 라고 나도 모르게 들었던 그 생각은 또 무엇인지.


하지만 본질은 이렇다.

예쁘고 애교 많은 딸이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내게는 그냥 두 아들도 아니고, 발달 지연이 있는 두 아들이 왔고,

나에게 있어서 육아는 그냥 고난의 연속이었다.

물론 순간순간 아이들이 예쁠 때도 있지만,

내게 육아의 큰 그림은 그렇다. 고난.


나는 항상 나의 발전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발달이 느린 두 아들을 키우며 나에 대한 많은 부분을 내려놓았고

그리고 그 사실에 익숙해 지려고 실시간으로 애쓰는 중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아들이 둘이 있어서 어쩌냐는 주변의 공허한 얘기는

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만약에 나에게 아들이 둘인데

정상발달을 하며 애교가 많은 아들들이었다면

그런 소리에도 그냥 "아들도 괜찮은데?"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었을까.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내게 딸이 있었어도 발달 지연에 자폐 성향이 있는 딸이었다면

그 딸도 나에겐 고난을 안겨주는 존재였겠지.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의 존재를 강하게 믿는 나의 친구가(그런데 우울증에 걸린)

"신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려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고난을 주신다"라고 했을때,

과연 그 신은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이 고난을 주시는 걸까.

내가 그간 너무 내 중심적인 삶을 살아서,

혹은 자꾸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잘 되려고 애쓰는 옹졸한 삶을 살고 있어서,

그래서 신은 나에게

그런 것은 의미가 없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며 살라는 그런 깨달음을 주시려고

나에게 우리 아들들을 보낸 걸까.


뭐 그런 생각까지도 해봤다.



오늘 문득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한 것은,

또 앞으로 숱하게 닥쳐올 그 무례한 "아들이 둘이라서 어째요" 류의 코멘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기분 나빠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에게 온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와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지나가는 행인들의 무례한 발언에 쓸데없이 부정적 감정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로운 치료 세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