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몇개쯤은 내려놔도
첫째의 생일이었다.
둘째의 발달재활서비스 의뢰서를 받으러 병원이 3시에 예약 되어 있었고,
둘째의 놀이치료가 4시 15분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나는 도저히 퇴근을 3시에 할 수 없었기에 남편에게 오늘 특별히 연차쓰고 3시에 병원 가서 받아오고 일찍 마친김에 둘째 놀이치료도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너무나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첫째의 생일이니까,
첫째에게 돌봄 교실에 있지 말고 방과후 끝나면 바로 태권도 갔다가 바로 집에 오라고 하고,
생일 케이크를 함께 고르자고 했다.
놀이터에 친구가 있다면 잠깐 같이 놀아도 좋을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출근했다.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던 날이니까,
첫째에게 뿐 아니라 나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날이니까,
오랜만에 예쁜 옷을 입고 출근했다.
그렇게 기분이 좋던 찰나에
남편이 조금 늦게 마쳤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발달재활서비스 신청은 내일이 마감이고,
병원에서는 의뢰서를 받으려면 반드시 3시까지 오라고 여러번 전화해서 확인했던 차였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완벽했던 계획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남편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너는 왜 항상 그딴식인거니.
나는 이렇게 초단위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너는 도대체 왜 그딴식으로밖에 못하는거니.
너때문에 너때문에 오늘 하루를 망쳤잖아.
눈물이 날것 같았다.
남편은 그럼 둘째 치료를 취소하고 병원에 의뢰서를 받으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둘째 치료를 취소하겠다고 하는 무책임한 남편말에 또 분노를 했고
치료를 취소하는건 안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더러 의뢰서를 받으러 가랜다.
이미 늦었어. 그 시간엔 못가.
의뢰서고 나발이고 생일이라 들떠 있을 첫째가 집에 혼자 덩그러니 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병원에 전화를 했다.
제가 워킹맘인데요,
직장일이 바빠서 퇴근이 좀 늦었습니다.
늦게 가도 괜찮을까요.
병원은 퉁명스러웠다.
대기가 길다는둥 어쩌구저쩌구…
네, 그래도 가면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럼 일단 4시 30분까지는 오랜다.
나는 또 실내화를 집어던지고 구두로 급히 바꿔 신은 다음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그리고 첫째를 태권도에서 픽업했다.
첫째에게 병원에 가야한다고 설명하고 함께 아이와 30분 넘게 의뢰서를 받기 위해 대기를 했다.
첫째는 의젓하게 토도수학을 하며 그 시간을 보냈고,
나는 병원 문 닫기 전에 의뢰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케이크는 남편이 사왔다.
첫째는 윗층 형아를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윗층 형아가 첫째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좀 꺼렸지만
첫째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니 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윗층 형아가 집에 왔고, 첫째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케이크를 자르고 먹고, 또 형아랑 30분 가량 놀았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첫째에게
오늘 어떤 것이 가장 좋았냐고 했더니
윗층 형아가 생일 축하를 해준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토록 남편에게 화가났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그냥
어 그래
직장생활하다보면 늦을 수도 있지
그리고 남편은 멀리서 다니잖아.
왜 그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까.
나는 여전히 마음의 여유가 없고
내 계획이 틀어지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직은 그렇지만
첫째의 쿨한 태도를 보며
행여나 내가 이렇게 꽁해 있는 걸 보고 나에게 이런 나쁜 습관을 배울까봐 되려 걱정이 되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아이가 좋은 사람이 된다.
그건 진리다.
나는 오늘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가.
나는 내가 만든 틀(계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괴물로 변하는 이상한 습관을 버리려고 노력했는가.
오늘도 내일도 연습하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