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아니지만

나도 그가 아니니까

by 메이

오늘 둘째 센터를 다녀와 아파트 1층으로 나가보았더니 첫째가 동네 친구들 여러명과 놀고 있었다.

놀다가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첫째는 그 상황이 즐겁게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퇴근 후 정신없는 어린 둘째를 쫓아 다니느라 사건의 발단을 보지 못했지만, 결론은 그랬다.

넘어져 세상 서럽게 울고있는 둘째를 들쳐 안고 5명 정도의 동네 아이들에게 구석에서 맞고있는 첫째 앞에 서서 동네 아이들에게 "이건 노는게 아니라 괴롭히는 거야. 분명히 알아둬"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 상황을 노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첫째에게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런 비슷한 장면은 몇번 있었다.

몇 달 전 키즈카페에서도,

몇 주 전 또 아파트 1층에서.

나는 부인하고 싶지만 이 정도면 우리 아이의 문제가 맞을 지도 모른다.


언어발달지연이었던 첫째가

그래도 이렇게 말을 잘하고

그래도 이정도의 정상 지능을 가지고

학교 가기 싫다는 말 한번 없이

엄마의 휴직도 없이

한 학기를 마무리 해 가고 있음에 나는 무한 감사를 하고 있었지만

이런 장면이 반복되자 나는 좌절감에 빠졌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 아이의 삶에 개입해야 하는가.

그리고는, 지금 또 언어 뿐 아니라 전반적인 발달 지연인 29개월의 둘째를 보며

너의 삶에는 또 내가 언제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그 생각에 머리가 아찔했다.

나는 그만, 자유롭고 싶어졌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단단히 일렀다.

그렇게 노는건 노는게 아니야.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 생각해봐. 시작점은 무엇 때문이었지?

아이는 누구를 장난으로 놀린게 시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런 말은 하지말자. 절대로. 그리고 여러명이 너를 둘러싸고 괴롭히는 상황에서 당황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든지 아니면 내가 장난으로 한거니까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라고.


아이는 늦은 저녁밥을 먹고, 또 신나게 종이접기를 했다.

나는 또 그 와중에 가방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학교에서 내준 과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는 1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를 보고 울컥 화가 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둘째는 집안 곳곳을 다니며 장난감을 엎어놓고 화장실 물비누를 다 짜놓고 난리도 아니었다. 남편은 연락도 없이 야근이었다. 나는 거실 한가운데 앉아서 또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욕이 입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었다.


"왜 화내는거야"

첫째가 물었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래. 니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어"


첫째는 그제서야 과제를 시작했고, 가방도 정리했다.

나는 다시 차분해지려고, 현명해지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자 첫째는 "엄마 스트레스 받았는데 화내지 않고 말하려고 노력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그래.

그 노력을 알아줘서 고마워.


미쳐버릴 것 같은 하루였지만,

아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엄마 꼭 안아줘" 하면서 잠들었다.

내 배를 만졌다 꼬집었다 하며 스르륵 잠든 둘째는 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그를 존중하는 선에서

왜냐면 나는 그가 아니고 그는 내가 아니니까,

찬찬히 일러 주고 조금씩 바꾸어 가자.


인생 장기 목표 따위는 보이지 않고

하루하루 미션 클리어 하듯 살고 있지만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기 미션을 클리어 했으니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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