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첫째는, 24개월 쯤 세브란스 소아정신과를 처음 찾았다.
아이가 8개월 되었을때 어린이집 교사를 하던 조리원 동기가 "세상이는 눈을 잘 못맞추네요"라고 얘기한 것이 시작이었다. 13개월에 남편 지인이 하는 센터를 찾아갔다. 거기서 자폐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13개월 아이에게 의사도 아닌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앞이 막막했다.
아이는 언어도, 사회성도 정상발달에서 한참 떨어졌다. 두돌이 지나도 엄마아빠를 못했다.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출근을 하고 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센터에 갈 여유가 없었다. 괜찮은 센터의 시간은 다 내가 갈 수 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번씩 홈티로 진행했다.
아이는 조금씩 말이 트여 29개월에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눈맞춤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긴 했다. 그때부터 기차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기찻길을 보면 눈을 뗄수 없었고, 매니악 스럽게 기차 종류나 기차의 부분을 외우기도 했다. 그렇게 기차에 대한 애정? 혹은 집착은 7살때까지 계속 되었다.
지방에 잠깐 살았던 시기에는 내가 휴직을 했고 둘째가 태어났다. 그 와중에도 세브란스를 일년에 두번씩 가고 있었고, 여전히 자폐와 ADHD 진단이 딱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약을 먹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웩슬러 풀배터리 검사를 했을때 지능은 정상으로 나왔고 다만 작업처리능력이 좀 떨어지기 때문에 ADHD를 의심해볼 수 있다고 하셨다. 인천에 있는 소아정신과에서 ADHD 검사를 했을때는 점수가 굉장히 낮게 나왔다. 그 이유는 검사할 때 중증자폐인 아이가 검사실 밖에서 계속 울부짖고 있어서 아이가 검사에 집중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애매한 검사환경 때문에 우리는 검사 결과에 신뢰를 하진 못했지만 의사선생님은 메디키넷을 처방해주셨고, 나는 일주일 넘게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살짝 먹여보았는데 잠만 더 설치고 입맛만 없어지고 집중력이 전혀 향상된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소량이라 효과가 미미했겠지만, 나는 안그래도 잘 안먹는 애인데 약 먹고 괜히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그것도 관둬버렸다.
그리고 올 초 다시 세브란스를 찾았을 때는 ADHD 약이 우리 아이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아이가 자폐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또 크게 좌절했다. 아니 그러면, 우리 애는 자폐라고 진단이 떨어진것도 아닌데 성향이 있어서 ADHD 약을 먹여도 효과가 없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 와중에 작년부터 언어치료(화용)를 시작했고, 드디어 짝치료(천근아 선생님이 4살부터 하라고 하셨던)도 시작하게 되었다. 짝치료를 8개월 가까이 진행했고, 짝인 아이는 ADHD약과 불안 약을 먹고 있는 아이었다.
그리고 어제, 또 세브란스 진료를 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1학기 동안 쓰던 책과 노트를 싸들고 지하철을 타고 1시간 가서, 또 한시간 반을 대기해서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천근아 선생님은 아이에게 학교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아이는 꼬박꼬박 대답을 잘 했고 장난스러운 얘기도 했다.
선생님은 너무 좋다며, 더이상 오지 않으셔도 되고, 그냥 정상아처럼 키우시면 된다, 짝치료도 그만두어도 무방하다고 하셨다. 아직 아이의 노트를 보시지도 않았기에 주섬주섬 꺼내 아이의 노트를 보여드렸더니 글자도 반듯하고 너무 괜찮다며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그냥 인천에 있는 소아정신과 아무데나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감격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둘째 아이 진료을 등록을 하고 나왔다. 그만 보고 싶은 천근아 선생님, 둘째랑 또 만나요.
여하튼 그렇게 진료비를 수납하려고 하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
정상아라는 말.
나는 우리 첫째가 때로는 너무 정상인것 같다가도 문제행동이 나오면 아, 자폐 성향이 있지, 아, ADHD 성향이 있지 등의 의사의 말에 매몰되어 답도 없는 암흑으로 치닫았던 적이 많다. 그냥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애, 그냥 눈치 좀 없는 애 정도로도 볼 수 있는데 자폐성향이라는 그 모호한 말에 답도 없이 아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친구관계에 부딪힘이 있으면 “우리 애가 좀 이래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죄책감이 있던 엄마였다. 거의 돌무렵 부터 지금까지…
8살이 된 우리 첫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소아 정신과 의사가, “아주 정상이고 정상아로 그냥 키우시면 된다”고 하셨으니
나는 이제서야 여태까지 아이에게 가졌던 묘한 감정들을 이제 추억으로 고이 접어 두고, 아주 정상인 말썽꾸러기 초등학생으로, 그렇게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둘째,
아직도 말 못하는 30개월 다되어가는 우리 둘째도,
첫째 처럼 잘 클 것이고, 잘 키울 것이다.
나는 그저 아이가 자신의 속도대로 크고 있지만 더 좋은 자극을 많이 줄 수 있는 든든한 부모로서,
그리고 현명한 부모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마음의 짐을 조금 덜었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기쁨이 넘친다.
수고 많았어, 나 자신,
수고 많았어 우리 큰 아들.
그리고 우리 남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