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미 망했다고 되받아쳤지만
오늘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갔다가
어떤 가족을 만났는데, 마치 티비에서 나오는 가족같아 보였다.
엄마는 예쁘고 아빠는 훈남이고 아이들은 사랑스러웠다.
집은 깨끗했고 아이들은 처음 보는 우리를 반겼다.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의 지금의 형태를 생각하니 비참해져서.
(역시 비교란 참 나쁜 것이다.)
오늘도 첫째는 아이패드를 켜달라, 종이접기 같이 하자,
어디 가기 싫다, 다리 아프다, 등등의 징징거림의 연속이었고
최근들어 나를 미친듯이 꼬집기 시작한 둘째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고
거의 10일만에 집에 풀타임으로 있는 남편은 오랜만에 본 아이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때리기까지 했다.
첫째는 내게 아빠가 싫다고 했다.
첫째는 오래전부터 아빠가 싫었다.
그렇게 훈육하면 아이가 아빠를 싫어하고, 사춘기 되면 더 감당이 안될 것이라고 남편에게 얘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 너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매일 혼자 아이둘과 고군분투 했던 나는 또 눈물을 쏟고 말았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바로 그 곳의 모습일 것이다.
전쟁 끝에 아이들을 재우고 앉아서 남편과 얘기를 하니
남편은 인생이 우울하다고 했다. 이번 생은 이미 망했다고 진작에 생각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저번에도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적어도 내가 꿈꾸던 형태의 삶을 살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8월 내내 정작 집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오늘 딱 하루 같이 있는데 우리집의 모든 거지같은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는 남편에게
내가 경솔하게 너와 결혼을 한 순간 부터 내 인생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망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왜냐면 그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사실에 슬퍼졌다.
우리는 작년에 정말 치열하게 싸웠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꺼내서는 안되는 금기어라 여겼던 이혼이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기도 했고 부부상담도 받았다.
나는 오늘의 언쟁이 또 도돌이표라는 사실에,
그리고 이 언쟁이 어쩌면 이 남자와 사는 내 인생 내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 쳤다.
하지만 백번 천번을 생각해보아도
우리에겐 좀처럼 쉽지않은 두 아들이 있고
특히 장기 레이스에 대비해야 할 둘째에 대한 문제가 산적해있다.
이 와중에 다 큰 어른이
그것도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서 한 몫을 하고 있는 멀쩡한 어른이
그렇게 중요한 책임을 뒤로 한채 서로의 감정에 지레 지쳐 이혼을 한다는 것은 글쎄, 내 몹쓸 책임감이 허락하지 않는다.
분노조절 장애 & 공감능력 제로 남편
우울증 엄마
adhd 첫째
자폐 둘째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듯,
우리는 이런 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려는 최근의 사회적 움직임에 맞추어
우리 가족도 그냥 그런 다양한 형태의 가족 중 하나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그 속에서 건강을 찾으려고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으려고, 행복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쓰는 수 밖에 없다.
지치지 않기 위해 애쓰자.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애쓰자.
기록하고 마음을 정리하자.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