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업무든 그러하듯
동네에 사립초를 다니는 아이와 첫째가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첫째를 사립초에 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가 막상 떨어지고 한동안 힘들어했던 작년 말을 떠올리니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가 마냥 부러웠다.
얼마나 좋을까.
지금 들어가려면 대기 200번이라는데, 운도 좋지.
나는 그렇게 뭐든 착실히 준비하는데도 운이 지지리도 없다. 사립초까지 떨어지다니. 하필이면 우리가 지원하던 그해 경쟁률은 역대 최고였고, 간당간당한 예비번호조차도 아니었다.
둘째를 쫓아다니느라 그 엄마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다가
오늘 모처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립초에 아침마다 데려다주는데 왕복 한 시간은 걸린다,
아직 문해력이 꽝이라 연산만 겨우 하고 있다,
학비가 비싸서 아무 학원도 안 보내고 있다,
등등의 하소연을 하는데
그런 하소연 조차도 부러웠지만, 생각해보면, 왕복 한 시간을 해서 초등학교를 보내는 노력은 사실 대단한 노력이고
워킹맘인 나는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느린 둘째 치료센터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무려 6년을.
그 어떤 엄마와 얘기해도, 아이의 부족한 점에 대해, 현재 육아에 대해 불안한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정상 발달하는 아이잖아요. 내버려두면 잘 클 거예요”라고 외치지만,
원래 자기 고민이 제일 큰 법.
육아는 근본적으로 불안한 업무라는 사실만 깨달았다.
왜 20대가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라고 하는지,
나는 그 시기에 그걸 절실히 알고, 치열하게 살았고,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이런 삶이 주어졌다.
나처럼 치열하게 열심히 멋지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도
언뜻 나보다 괜찮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내 마음의 소리인 것 같다.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비교를 통한 우월감이나 성취감, 뭐 그런, 생각해보면 유치한 감정들이었어서 지금이 꽤 비참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좀 더 절대적인 가치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내기.
그날 하루 그냥저냥 괜찮게 살기.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지레짐작하지 않기.
지금, 여기를 소중하게 여기기.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은 불안한 업무를 하고 있으니
좀 더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
감사일기 쓰기를 시작해볼까.
예를 들어…
나는 출근길에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 들렀는데 대기가 전혀 없어서 바로 커피를 받아서 출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1%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소소한 것들을 더 오래 기억하고, 더 감사하기.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