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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Sep 18. 2022

그 난리통 속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은 항상 있다

힘겹지만 찾아내야 한다.


아침에는 남편이 새벽같이 골프를 갔다.

어제저녁까지도 나는 퇴근 후 혼자 둘째 치료와 첫째 학원 스케줄을 저글링하고 아이들 저녁밥을 먹이느라 진이 빠졌는데

새벽에 깼다가 심지어 잠도 안 왔다.

그렇게 뜬눈으로 있다가 남편이 새벽 4시 반에 골프 나가는 소리를 온전히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맞이한 토요일 아침.

오늘은 특별히 9시에 첫째의 태권도 예비심사가 있었고 아이는 8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다.

얼른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려고 했더니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실패할까 봐 두려운 것 같았다.

“나 심사 떨어지면 태권도 그만둘 거야”로 시작해서 “오늘 안 갈 거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둘째는 이리저리 집을 어지르고 다니고 있었고,

3시간도 채 못 잔 나는 슬슬 멘털이 나가기 시작했다.

떨어질 수도 있어. 떨어지면 어때. 하지만 일단 가서 해보자.

겨우 밥을 먹이고, 챙겨서 나갔다.

아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오늘 예비 심사는 캐주얼한 이벤트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예비심사를 잘 마친 첫째는 꽤 기분이 나아져 있었다.


10시 30분까지 첫째 축구 교실, 둘째의 언어치료가 동시에 있는 시간.

축구교실은 집 근처라 첫째가 스스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태권도복을 얼른 벗고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힌 후 1층에서 잘 다녀오라고 보내고 나와 둘째는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둘째의 언어치료실에 도착할 무렵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첫째의 핸드폰은 집에서만 쓸 수 있는데, 그럼 아이가 집에 있다는 뜻이다.

“엄마 나 축구 교실 어딘지 모르겠어.”

추석과 경기 때문에 3주 만에 축구교실을 가는 거라 가는 길을 잊어버렸단다.

집 앞에 상가가 여러 개 있어서 헷갈릴 수도 있겠다, 아직 초1이니까…

게다가 축구화를 혼자 신고 끈을 맬 줄도 모르는데

집으로 와서 전화를 하고 있었으니 다시 신발도 신겨줘야 한다.

둘째를 얼른 치료실에 보내 놓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와”

첫째를 얼른 데리고 다시 축구 교실로 보내주었다.

신발은… 1층에서 신겨주려고 했는데 어찌어찌 본인이 잘 신고 나왔다.

나는 다시 언어치료실을 향해 시동을 켰고

그때

공황장애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에 땀이 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순간 신호가 걸렸고,

나는 발끝까지 있던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거친 욕도 했다.

내가 오늘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가.

그건 다 이기적인 남편 때문이야. 어떻게 이렇게 스케줄이 빡빡한 아들 둘을 알면서 혼자 골프를 치러가지?

사이코 패스다. 그 새끼는 사이코 패스다.

신호가 끝날 때까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언어치료실로 돌아가 앉은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러고 살지.

또 자기 연민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나는 그렇게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왜 이러고 살지.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던 게 불과 이틀 전 일인데

또 이렇게 동굴을 파고 들어가 우울해지기 시작하다니.

순간 빠르게 긍정적인 면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치료실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첫째에게 다녀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로 시작했다.

“둘째가 언어치료 선생님과 둘이 있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크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로 이어졌다.

그랬다면 집으로 가기 힘들었겠지.

지각은 했지만 첫째를 축구교실에 보내게 된 것도 다행이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아침에 그 난리를 치며 태권도를 그만두겠다고 했던 첫째가 기분 좋게 예비심사를 마치고 온 것도 감사한 일이다.

수면부족에 생리통 때문에 컨디션이 바로 좋아진 건 아니지만,

이 난리통 속에서도 다행인 일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 일은, 언제나 있었을 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해낸 나는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에게

오늘 이런 일들이 있었고, 잠이 부족하고 두통이 심하니 집에 오면 나 좀 잘 테니까 애들 데리고 나가 달라고 문자를 했다.

남편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나에게 쉬라고 했다.

정확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건 아니고, 둘째는 내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지만

나도 몇 년 만에 낮잠을 자고

첫째도 아빠와 시간을 보내다가 왔다.


그러니…

그렇게 최악의 토요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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