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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Sep 23. 2022

벼랑 끝에 선 기분일 때…

벼랑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퇴근하고 아이들 간식을 먹인 후 첫째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둘째와 언어치료실에 가고 있었는데 첫째에게서 전화가 온다.

예감이 안 좋다. 휴대폰은 집에서만 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난 토요일처럼 뭔가 문제가 생겨 집으로 돌아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발 응가 마려워서 왔다고 해라… 제발…

하지만 항상 그렇듯,

신은 나에게 더 극한 상황을 준다.

오늘은 첫째가 피아노 학원까지 3분밖에 안 되는 그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얼굴을 제대로 갈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 도움이 안 되겠지만

오늘 양재에서 술 약속이 있다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첫째에게 전화를 해보겠다더니 약 바르고 피아노 학원 가라고 했다고 했으니 신경 쓰지 말고 둘째 언어치료실에 가라고 한다.

다시 첫째에게 전화해보니 여전히 피가 나고 있으니 엄마는 지금 빨리 집으로 와달란다.


둘째를 언어치료실에 넣어놓고

또다시 집으로 달렸다.

첫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누가 둘째 좀 데리고 와줘요. 아니면 누가 첫째 좀 병원에 데리고 가줘요. 눈물이 펑펑 나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더니 씩씩하게 있던 첫째도 울어 버렸다.

순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시간을 지체해선 안된다.

대충 조치를 취해놓고 둘째를 데리러 올 때까지 잠깐 피아노 학원에 가있으라고 한 다음

다시 언어치료실로 가서 둘째를 픽업하고,

애들을 데리고 인근에서 가장 잘한다는 피부과에 갔다.


대기하는 동안

둘째는 내내 소리를 지르고 나가겠다고 난리였다.

나는 속으로 이 상황을 저주했다.

낯선 병원에 있기 싫은지 계속 소리 지르는 둘째를 데리고 대기하는 10분은 수억만 년처럼 느껴졌다.

이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저 이 아이를 잡아두고 있어야 하는 내가 괴로울 뿐.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첫째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지만

둘째가 난리를 치는 통에 그럴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1주일 정도는 매일 병원에 오라고 하셨고

그 말은 안 그래도 충분히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는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조금 깊게 파인 상처도 있어서 흉터 레이저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첫째를 봤던 친구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첫째가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도 엄마 오는 동안 기다린다고 피아노 학원 가서 씩씩하게 있는 게 대견하다고 했다.

얼굴에 못해도 8cm 정도 시뻘겋게 핏자국이 있는데도 자기는 괜찮다고 얘기했단다.

실제로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 정말 다행인 건 머리를 다치지 않았다는 거야”라고 얘기했다.

그땐 너무 놀라서 그 말에 대꾸도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특한 말이었다. (이미 머리 두 번 깨져본 애라, 머리를 다치면 얼마나 불편한지를 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얼굴에 붙인 메디폼이 불편한지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피아노 학원 가기 전으로 돌리고 싶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뛰어다니지 말랬잖아. 앞으론 절대로 뛰지 마.

-응 알겠어…

항상 혼자 다닐 때 뛰어다니는 첫째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앞으론 좀 덜 뛰어다니겠지.


지나고 보니 병원에서의 둘째도

소리를 좀 지르긴 했지만 자지러지게 울었으면 더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만하니 다행이었다.

첫째가 치료를 마칠 즈음에는 둘째는 치료실 옆에 있는 세면대를 발견하고는 물장난 치느라 살짝 진정이 되기도 했다.


저녁밥을 차릴 힘도 없어서 그냥 사 먹일까 하다가,

또 급히 반찬을 하고 아이 둘을 먹이는데 늦게 먹는 저녁이라 그런지 둘 다 맛있게 잘 먹어 주었다.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떨어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긍정의 마지막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9시 무렵 남편에게 전화했을 때 남편은 여전히 양재였다.

나는 몇 년째 주말부부를 하고 있는 직장동료가 “그냥 한부모가정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괜한 기대 하지 않고”라고 멋쩍게 웃으며 얘기했던 게 기억났다.

나도 이런 날엔,

아들 둘 딸린 싱글맘이다 생각해야 맘이 편하다.

그렇지만 애들 재우고 새벽에 깨어보니 그래도 집에 돌아와 설거지도 해놓은 남편이 있으니,

그래,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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