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32개월이 된 우리 둘째는, 여전히 무발화.
오늘은 놀이치료에 다녀온 후 치료센터에서 만난 아이의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기로 한 날이다.
사실 둘째의 친구를 집에 초대해본 적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둘째가 어떤 반응일지도 궁금했고
덩달아 첫째도 살짝 신이 났다.
부랴부랴 퇴근하고, 아이를 치료센터에 데리고 갔다가 돌아와서 집 청소를 해놓고, 음식을 주문해놓았다.
하지만 친구 엄마는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그 집 느린 아이가 하도 깽판을 쳐서 출발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나도 오늘 아침에 연휴 끝에 어린이집 앞에서 선뜻 들어가기 힘들어하는 둘째를 데리고 어린이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학교에 5분 지각하지 않았던가.
느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식어가는 음식이 야속했지만, 마음을 너그러이 먹고 기다렸다.
하지만 둘째는 치료실에 다녀온 후에는 꼭 동네 산책을 나가는데, 친구를 기다리느라 산책을 가지 않으니 화가 났다.
외투도, 양말도, 마스크도 벗으려고 하지 않고 현관문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며 서성였다.
결국 첫째와 둘째를 모두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고,
또 기가 막히게 그 타이밍에 친구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
신이 나서 나왔던 둘째는 또 난리를 치며 집으로 들어왔고 여전히 외투와 양말을 벗지 않고 산책을 대기하고 있었다.
휴…
음식은 이미 차갑게 식었고,
낯선 집에 온 그 집 아이도 소리를 지른다. 그 집 둘째도 울어재끼기 시작.
우리 둘째와 그 집 아이는 서로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가, 서로 머리를 한 번씩 때리곤 했다.
요즘 둘째는 “예쁘다~~”기술을 연마했는데 이게 예쁘다 기술이라고 보기엔 좀 강도가 센 듯했다.
다행히 초등 형님 첫째는 태권도에 가 계셨기 때문에 총체적 난국을 피할 수 있었지만,
나는 친구 엄마와 느린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기대했지만 결국은 몇 가지 주제만 투척했다가 다시 주어 담는 꼴이 되었다.
우리는 차갑게 식은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돌아가면서 소리 지르고 울고 하는 아이들을 케어하기 바빴다.
나는 둘째 친구 엄마의 첫 방문을 기념하느라 맛있는 드립 커피를 주문해놓았는데, 뭐, 커피에는 손도 못 댔다.
하원 후 일상이 안정되어 있었던 우리 둘째는 친구의 방문으로 패턴이 깨지자 몹시 불편한 모습이었다.
첫째가 태권도에서 돌아왔고,
여전히 산책에 목말라 있는 둘째를 위해 우리는 다 같이 나가기로 했다.
역시 에스컬레이터로 돌진하는 둘째.
2인용 유모차를 갖고 온 친구 엄마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나는 둘째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만남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첫째의 방문 학습지 선생님이 오실 예정이라 첫째에게는 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아직 아이가 혼자 선생님과 있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밖에 나오자 그 집 아이도 우리 집 둘째도 안정을 찾았기에 이제야 대화가 가능했다.
몇 가지 고민거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그 집 둘째가 추워서 인지 울기 시작했다.
에휴..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이미 너무 진이 빠져서 더 이상 대화를 할 힘도 없었고, 친구 엄마가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이런 마음이 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참, 진이 빠지는 날이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단 생각도 사라지고,
나는 어서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워서 자유를 얻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그렇게 사람에 목말라했던 나는,
그렇게 사람에 목말라 보이는 그 친구 엄마를 만나서
힘든 두 느린 아이를 데리고 고군분투하면서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대화는 전화로 하자.
만남은 치료실에서 하는 걸로 하자.
친구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을 때, 그때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자.
그러했던 나의 고군분투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