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여전히 사랑스러워야 한다.
오늘은 어린이집 하원 후 느린 둘째와 아파트 놀이터로 갔는데, 어린이집 같은 반을 2년 동안 함께 해오고 있는, 같은 20년 2월 생인 아이가 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우리 둘째를 보자마자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같이 놀자고 얘기하고, 손잡고 같이 가자고 하고, 같이 놀자고 했다.
말을 재잘재잘 잘하는 여자아이,
무언가를 하고서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서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
우리 아이는,
친구가 있었음을 인지했지만,
같이 노는 수준이 아니다.
우리 아이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는 그 앞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한 번만 타는 것도 아니고 무한 반복하길 원했다.
어린이집 친구 아이는 그런 우리 둘째를 따라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탔고,
무한 반복하는 우리 아이를 보면서 “00야 그만 타고 놀이터에서 놀자~”라고 했다.
“미안해~ 우리 00은 에스컬레이터를 더 좋아해~ 엄마랑 놀고 있어~”라고
우리 아이를 대신해서 말해주었다.
우리 아이가 내는 괴음 ‘음음음’, ‘끼끼끼’ 같은 소리를 듣고서는 따라는 그 아이.
그 아이 엄마에게 미안해져서 후다닥 자리를 피할까도 싶었지만,
내가 굳이 피하려고 하지 않아도, 미친 듯이 날뛰는 우리 아이를 잡으러 다니느라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게 사실이다.
며칠 전 느린 우리 아이의 느린 친구가 놀러 왔을 때와는 다른 씁쓸함.
내 아이가 정상발달하지 못하고 있어서 괴롭다는 사실을,
어떤 긍정적인 생각으로 덮어둘 수 있을까.
나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냥 그 기분에 머물러 있기로 했다.
어제 무슨 얘기든 다 터놓는 나의 오랜 친구를 만나 우리 둘째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미혼인 그녀는, ‘야 나는 내가 그런 애를 낳을까 봐 두렵다. 나는 너처럼 담대하지 못해서.’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닫았다.
나 담대하지 않아.
나 매일 상처받고 매일 울고 싶고 그래.
매일 미래가 두렵고, 언제까지 이렇게 인생을 갈아 넣어서 아이를 케어하며 살아야 하는지 답답해.
하지만 입을 닫았다.
굳이.
뭘 또 그런 말을 굳이 해.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그토록 20대 때 가고 싶었지만 실패했던 국비유학을 간 사람 중, 유학 도중 이혼을 하고 우울증으로 학업을 중단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이는 남의 인생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어려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고난도 인생이지만,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기에 나에게 주어졌다고,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친구는 내게 얘기했다.
그건 사실일까.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인생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쓸 뿐이다.
그러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만이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한참 곰곰이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그런 기분 속에 있기로 했다.
애쓰며 살지 말라는 누군가의 조언이,
내게는 적용되지 않음을
나는 언제까지나 애를 쓰고 살아야 할 것 같지만,
내일은 조금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내일은 퇴근이 이른 날이라,
그동안 건조증으로 고생한 눈을 위해 안과 진료도 받고
안경 도수도 조절하고,
혼자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지내봐야지.
그래 봤자 2-3시간이겠지만.
그런 2-3시간이라도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또 힘을 내보겠지 나란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