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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Oct 14. 2022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하지만 그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경우는 대게는 본인이 지쳐서라고 한다.

퇴근 후 첫째를 데리러 학교 돌봄 교실에 갔더니 나를 발견하자마자 자기는 학교에서 좀 놀고 가겠다고 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우리 첫째가 학교에서 놀고 가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내 첫째 아이는 학교 내 병설유치원 아이들이 노는 모래 놀이터에 가서 유치원 아이들과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겠다고 난리인 둘째를 붙잡아 놓고 첫째를 관찰해봤더니

유치원 아이들과 계속 땅을 파고 있다.

더 이상 관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첫째에게 10분만 놀고 집에 오라고 얘기한 후 둘째와 집으로 돌아갔다.


치료실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 30분 전.

원래는 첫째 둘째에게 간식을 먹이고 집을 대충 정리하고 할 시간이지만

첫째가 땅을 파고 있는 바람에 일단 둘째만 부랴부랴 먹였다.

치료실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 10분 전.

첫째가 빨리 왔으면 했는데 끝끝내 오지 않았다.

둘째를 둘러업고 다시 학교로 갔다.

첫째는 여전히 유치원 아이들과 땅을 파고 있었다.

치료실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교문 너머로 첫째의 이름을 앙칼지게 부르며

당장 가방 챙겨 튀어 오라고 소리 질렀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와 아이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내가 큰 실수를 했음을,

내가 화가 많이 났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좀 참아야 했음을 즉각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내 고함 소리를 들은 첫째도 화가 나서 나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래투성이에, 심지어 팬티 속에도 모래가 들어갔다고 얘기했다.

그러고선 배가 고프다고 했다.

넌 10분만 놀다 오라고 했는데 늦게 왔기 때문에 굶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뱉고 나서 또 바로 후회했다.)

하지만 실은, 나는 첫째의 간식을 작은 에코백에 싸서 갖고 왔었다.

노느라고 정신없었구나~ 엄마는 둘째랑 치료실 갔다 올 테니까 넌 피아노 학원 가서 이거 먹고, 바로 태권도로 가.

엄마 없이도 혼자 잘 놀고 학원도 왔다 갔다 하는 우리 첫째 기특하다”라고 해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결국 막말이나 뱉고 말았다.

내 인성의 그릇은 그 정도였다.


그렇게 첫째를 보내고 둘째와 주차장에 왔더니

둘째가 응가를 했다.

이제 100% 지각.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나는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예전 같았으면 눈물이 펑펑 났겠지만, 이젠 눈물조차 말라서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 인생을 저주했다.


차에 있는 물품들로 대략 둘째의 대변을 처리한 후 일단 출발했다.

그리고 또 차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난 둘째를 진정시키기 위해 타요 노래를 신나게 불러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좋은 엄마일까.

조금이라도 좋은 엄마가 되어가는 중일까.



화가 치밀어 오른 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8살밖에 안된 아이에게 말을 그렇게 내뱉은 것은 분명 내가 지쳐서이다.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사실을 인지했는데 말을 그렇게 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너무 지쳤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을 때,

너 곧 화낼 것 같으니 네가 할 일은 참는 것이다 라는 메타인지를 가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보인 거다.

오늘은 분명 잘못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화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합리화하지 말고,

어차피 후회할 거니까, 그 메타인지를 발동시키자.


그리고 오늘은 집에 가서 첫째에게 사과를 하고, 내가 ‘이렇게 말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그 말을 해주자.

그렇게 이해를 구하고

그렇게 더 성숙한 어른이, 엄마가 되도록 노력하자.


그것 말고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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