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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Oct 18. 2022

대저택에 산다고 한들 행복할까.

단칸방에 산다고 한들 불행할까.

결혼 9년차,

지금 집은 5번째 집이다.

그리고 또 곧 이사갈 예정.


나는 20살에 혼자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올라와서,

매년 이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건, 정말 끔찍했다.

가족과 고등학생 시절까지 19년간 한번도 이사한 적 없었던 나는,

20세부터 평균 매년 1.xx번 이사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옮겨다녀야 할까.


결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 멀쩡한 집에서 이사가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더이상 좁은 원룸방에서 씁쓸하게 혼자 잠만 자는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하는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직장에 따라, 아니, 남편의 직장이 이동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따라 마치 아파트를 원룸처럼 1년에 한번씩 이사다녔다.

그건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우리의 어리석은 젊은 날의 흑역사라고 할지라도,

이제 첫째 아이도 초등학생이고,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이라 안정된 환경에서 동네사람들과 어울어져 키웠으면 하는데

우리는 또 이사를 계획한다.


남편은 지금 사는 지역이 싫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 나의 직장의 물리적 거리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우리의 갈등의 많은 부분은

1. 내가 육아의 95%를 맡고 있다.

2. 그는 직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

결국 그의 직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내가 육아의 95%를 맡고 있다는 것이 우리 갈등의 주된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없이

자신의 힘듦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은 그게 진짜 원인이다.


우리는 새롭게 입주하는 아파트 2군데에 전세로 살아보았고,

5년 이하의 아파트에 월세로 2년 살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사는 집은 15년 넘은 낡은 아파트.

이사를 가기가 끔찍히도 싫은 나는 지금 아파트도 괜찮으니 그냥 이사가 가기 싫다.

하지만 그는 더 좋은 곳, 그의 직장에서 코딱지 만큼이라도 더 가까운 곳으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또 다음 이사 장소로 생각한 곳은 그가 만족할까.

그는 여전히 불만이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나있다.

우리가 펜트하우스에 산들, 그렇게 화가 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광화문 남편 회사 코앞에 있는 집에 간들 행복할까.

과연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인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나는 어제 그와의 대화를 통해 결코 그렇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디로 이사를 간들 아무 상관이 없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 이사가 너무나 속상하다.

우리의 지향점은 행복일까.

우리의 지향점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매번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

나는 어딜 가서도 사람을 잘 사귈 자신이 있었지만

느린 아이를 키우며 그럴 자신감도 사라졌다.

이제는 미래에 뭘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행복해지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과 즐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남편이 얼마나 늦게 퇴근하는지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

내가 가진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동안

아이들도 잘 자랄거라 믿는다.

그러니까,

그만 우울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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