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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Oct 21. 2022

첫째 아이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올 것이 온 듯

요즘 첫째는 확실히 불안해 보였다.

어린 동생과 워킹맘 엄마 (그리고 때론 존재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듯한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는 아빠) 사이에서

학교는 그럭저럭 다니고 있었지만, 뭐랄까, 갈수록 좋아진다기보다는 갈수록 염려스러운 모습이었다.

좋아한다고 했던 친구들과 싸워서 오는 일이 잦아지고,

대화를 해보면 당최 무슨 얘기를 하는지 횡설수설,

지시를 3개 하면 수행하는 것이 1개가 될까 말까.

공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좀 뛰어난가 했던 수학도 이제는 점점 둔재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드는 찰나에,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오늘 친구와 다툰 얘기,

그리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한다는 얘기.

전체적으로 주의를 주면 전혀 못 알아듣고,

개인적으로 주의를 줘도 3번은 말해야 알아듣는다는 얘기.

그러다 보니 주변 친구들이 우리 첫째에게 핀잔을 주고,

그것에 화나서 첫째는 또 소리치고,

그러다 보니 또 다툼이 나고,

뭐 그런 악순환.


첫째는 공격적이진 않지만,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할 때가 있다.

일부러 머리를 들이댄다든가,

친구 머리에 꿀밤을 주려는 시늉을 한다든가,

그런 것들로 선생님께 여러 번 주의를 받고, 친구들로 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지만

유치원 때부터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선생님께는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은지 조언을 구했다.

전문상담기관을 찾아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혹은 학교 상담 기관인 위센터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세브란스에서 정상이라고 얘기를 듣고 나서는 짝 치료도 종결하고 이제 방향도 없는데,

아직도 무발화인 둘째를 매일 센터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버거운데,

첫째는 이제 어떤 전문상담기관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


원인은 무얼까.

작년에 권유받았던 ADHD 약을 먹어야 하는 걸까.

나는 길을 잃었다.

나는 나도 잃었다.


내일은 그토록 기다렸던 파주 출판단지로의 2박 3일의 출장이지만,

이제는 그 어떤 업무에도 자신이 없어졌다.

그저 주저앉아서 엉엉 울거나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냥 다 내려놓고 난 최선을 다했으니 더 이상은 내 책임 아니라고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12시가 되어서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과,

퇴근 후 둘째 치료실에 갔다가 첫째를 학원에 모셔주고, 데리고 오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그리고 앉아서 낮에 미쳐 못 끝낸 업무를 하려다가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떻게 두 아이가 이렇게 다 속을 썩일 수가 있는 거냐고.

왜 내가 일군 가족들은 이 모양 이 꼴인 거냐고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뭐라도 집어던지고 싶었다. 누구에게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몇 명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삶에 바쁘다.

나는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다.

다행히 브런치에 마음을 써 내려가며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래도 우리 첫째가 건강하고, 이만큼 자란 게 어디야.

ADHD일거라고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며칠 전에 대학병원에 풀 배터리 예약도 잡아놨잖아.

담임선생님이 솔직하게 전화 주신 것도 진짜 감사한 일이다.

그냥 애정 없이 아이의 문제점에 대해 혼자 평가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또 한 번 경각심을 갖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ADHD 관련 독서도 게을리하지 말자.


한숨을 크게 쉬고

호흡에 집중하고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세 번 말하고

우울하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그렇게 또 다짐해본다.



별 수 있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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