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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Nov 09. 2022

화가 폭발해서 물건을 집어던진 날 feat. 공개수업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오늘은 첫째 아이의 학교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산만하고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피드백을 받은 이후 조마조마하며 학교를 방문했다.

예상대로 우리 첫째는 유난히 산만하고 유난히 큰소리로 친구들에게 굳이 안 해도 되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업 활동에 방해되는 행동을 한다거나, 교실을 돌아다닌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선생님이 왜 그런 피드백을 주셨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거기서,

교사의 관점에서

우리 아이는 참 미움을 받겠구나.

그런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거기서,

엄마의 관점으로

장난기 가득하고 산만하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수업 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를

기특하게 바라보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좀 심각해.

나는 첫째가 다니던 짝 치료 병원에 예약을 잡으려고 연락했다.


그러고는 도서 어머니회까지 야무지게 해내고 올해 남은 가족 돌봄 휴가를 탈탈 털고 학교로 복귀했다.

5교시, 6교시 수업을 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고2 남자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절반 이상은 무척이나 산만했고 남은 절반 중 2/3은 무기력했고 1/3은 열심이었다.

그 산만한 아이들을 보며,

너희도 귀한 아들들인데,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이들인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수업에 참여하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난히 큰 소리를 내며 수업의 맥을 끊는 아이를 보며

우리 아이가 커서 저렇게 될까 봐 노심초사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교사 엄마여서 그것도 고등학교 교사여서 우리 아이에게 그토록 엄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두면 커서 이렇게 될까 봐, 저렇게 될까 봐.

그래서 퇴근 후 집에 와서도 숙제를 하지 않는 (그것도 내가 낸 숙제를)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겨우 앉아서 한 문제 풀다가 지우개 가지러 간다고 했다가 응가하러 간다고 했다가 하는 아이를 보고

분노가 폭발해서 둘째의 플라스틱 컵을 집어던지고 코코아 박스를 발로 차며 난리를 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분노는 정말 무섭게 폭발해버렸다.

내가 학교에서 눈치를 보며 아이의 학교에 간들,

도서 어머니회를 한들,

애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어쩌란 말이야.

나 혼자 끙끙 앓고

성과는 없다.

그냥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

너도 둘째도.

그 와중에 퇴근해서 둘째 놀이치료를 하겠다고 치료실에 데려간들 애는 더디게 성장하고,

그 시각에 혼자서 태권도에 갔다가 집에 오는 첫째를 바라보며

나에게 가족은

나에게 자식은

그저 내 앞길을 방해하는 그런 존재같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내가 분노에 못 이겨 물건을 집어던지는 걸 본 우리 첫째는 울음을 터트리고

둘째는 무서워서인지 침실로 가버렸다.

나도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개판이야. 이 집은 정말 개판이야.

누구 하나 집에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까지 했을까.

남편은 오늘도 회식이었다.


끓어오르던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고

첫째도 그 와중에 숙제를 잘 해냈고

둘째도 혼자서 이래저래 놀다가 잠들었다.


자기 전 아이에게

엄마가 왜 너에게 그렇게 화를 냈을까

엄마는 너를 사랑하는데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아이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니까 내가 나쁜 행동을 하면 화가 나는 거지”라고 했다.

내가 참 많이도 했던 말이다.



나는 그렇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분명 오늘 밤 후회를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오늘은 점심도 못 먹으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 날이지만, 망한 날임을 인정해야 한다.

무조건 반성이다.

오늘은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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