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 날 보다 미워한 날이 더 많았다는 사실

엄마가 이딴 식이라 미안해서, 이젠 널 좀 더 사랑하려고.

by 메이

첫째도 발달문제로 어지간히 속을 썩였는데, 그것 때문에 소아 정신과 관련해서 괜한 정보만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둘째가 어릴 때부터 찬찬히 보는데,

돌쯤 되니 서서히 벌써부터 시각 추구 청각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안에 떨면서도

13개월에 복직해서 쭉 일을 하며,

그래도 36개월까지는 기다려 보라고 하니까,

그래서 실낱같은 기대로 기다렸는데,

어느덧 다음 달이면 36개월이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는 첫째가 어릴 때 자주 갔었던 아쿠아리움에 둘째와 단 둘이 갔다.

36개월 전이 무료라서 예약하긴 했는데, 가기 전부터 5분 만에 뛰쳐나오면 어떡하지, 아예 입구에서 드러누으며 어떡하지 고민했다.

예상대로 에스컬레이터에서 한번 브레이크가 걸렸고,

입구에 들어가니 그 아쿠아리움 특유의 캄캄함에 아이는 또 기겁했다.

그런 아이를 질질 끌고 아쿠아리움에 한마디로 아이를 집어 넣었다.

아이는 그냥 직진이었다.

내가 중간에 여기 거북이 좀 봐~ 큰 물고기 좀 봐~라고 외쳐도

아이는 전혀 들리지 않는 아이처럼 그저 직진이었다.


우리 둘째보다 어려 보이는 다른 아가들은 물고기를 하나하나 관찰하며 어쩌고저쩌고 재잘거리는데

우리 애는 그냥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입구를 향해, 혹은 그냥 앞으로 직진할 뿐

전혀 관찰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가 데리고 왔으면서

대충 예상도 했으면서

또 다른 애랑 비교가 되니까

나는 화가 끝까지 나버렸다.

나는 쌍욕을 내뱉었다.

야이 병신새끼야 눈깔이 있으면 좀 보라고

나는 더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지도 않는데 정말로 그렇게 아이에게 말했다.

거대한 기계 돌아가는 소리 덕분에 나의 쌍욕이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내 아이는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분명.


나는 그렇게 아이를 매일 미워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망했다고

너 때문에 내 미래는 없다고

남편도 미웠다. 애초에 너와 결혼하는 게 아니었어. 애새끼도 낳는 게 아니었어

그건 나답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매일 그런 후회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그날 오후 감각통합 치료 수업을 갔는데,

감통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가 수업에 아주 잘 참여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선생님, 저는 저희 애가 잘 참여했다는 걸 믿을 수 없어요. 오늘 아쿠아리움에 데려갔는데 진짜 중증 자폐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터놓았더니,

선생님께서는

치료실에서는 통제된 환경이라 잘 따르는 것이고,

감각 처리가 어려운 우리 아이에게, 아쿠아리움같이 조명이 어둡고 반짝이는 게 많고 웅웅 소리가 나는 그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는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고 그 공간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그저 나가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했다.

차라리 자그마한 수족관 카페를 가는 게 나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전에 자폐인에게 보이는 세상 영상을 본 기억이 났다.

흔들거리고 빙글빙글 돌고, 그런 세상.

그런 아이에게 아쿠아리움을 데리고 갔으니 아이는 괴로웠을 것이다.


내가 선택해서 낳은 아이인데,

어떤 아이를 낳겠다고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모습으로 내게 온 아이인데

나는 그냥 내게 맞춰서 아이를 여기저기 질질 끌고 다니면서

못 따라오면 미워하고 욕하고 그랬던

수준 이하의 엄마였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대체 어쩔 거냐고.

아이가 죽었으면 좋겠다, 어디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끔찍한 생각들을 수도 없이 해보았지만

이왕 사는 건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우리 아이에게 맞게 양육하고, 교육 환경을 마련해 주고,

내가 이 아이를 키운 것이, 또 다른 자폐아이를 키우는, 혹은 키우게 될 부모들에게 힘이 되도록

아이와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작년 11월, 2023년도에 휴직 희망자를 조사한다는 메시지가 왔을 때 1분 만에 휴직 희망서를 냈을 때 내 마음은,

이렇게 해서는 나는 직장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나는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면서

36개월을 기다리며

아이가 뿅 하고 정상발달 아이가 되길 바라며

그렇게 꾸역꾸역 내 일을 해댔다.

그래서 잘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작년에 맡았던 그 어떤 업무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상태로는 앞으로 맡을 업무도 제대로 될 것이 없을 거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 가족 모두의 밝은 미래를 위해,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기록해야지.


아이 때문에 인생 망했다고 생각했던 2022년을 뒤로하고

아이 덕에 성장할 수 있는 2023년이 되길.


1월 마지막 날에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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