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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04. 2023

결국 내탓일까

나는 그 어떤 것에서도 단점을 찾아내니까.

새로운 동네로 이사온지 한달 남짓 되어가지만 아직 부동산 주인 말고는 인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동안 많이 추웠고, 이 동네 아이들은 다 학원을 다닌다.

둘째는 발달센터를 다니고

첫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첫째에게 화상영어를 등록시켰고, 장원한자를 연장했고, 축구는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 하던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첫째는 항상 엄마 마음대로라고 얘기했다.


오늘 첫째의 종업식에, 전학 가기 전 마지막으로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드린다고 찾아갔는데,

친구들은 우리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서로 2학년때 몇반인지를 확인하며 귀가 했다.

우리 아이는 하루종일 시무룩 한 표정이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서 찍으신 단체 사진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다들 서로 부둥켜안거나 같이 하트를 만들거나 하는 모습인데

우리 아이만 가운데 우두커니 서있었다.

무표정으로, 혹은 슬픈 표정으로.

어제 아이와 열심히 포장해서 반 아이들 전체에게 나누어준 간식 선물도 무색했다.


남편은 일주일째 새벽 6시에 나가서 밤 12시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온전히 내 차지다.

지금 집에서 40분 거리의 학교까지 등교도, 센터 투어도, 식사도, 심심하다고 징징대지만 친구를 사귈 마음은 없는 첫째와 미친듯이 산만한 둘째의 자유시간도.


어제는 4시쯤 놀이터에서 한바퀴 하다가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 주차되는 어마무시한 양의 학원 차량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바이올린을 메고 축구양말과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유명 어학원 가방을 메고 태권도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문득

나는 이 동네에 이사를 오겠다고 마음먹었을때

우리아이가 좀더 다양한 교육기회를 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우리 아이는 이제 학원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고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다고 하니,

나의 선택은 또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교육으로 똘똘 무장한 아이들 사이에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다는 우리아이는

또 어떤 모습으로 그 가운데 앉아 있을까.

오늘 종업식에서 찍었던 사진처럼

그런 모습일까.


덩달아 남편회사까지 가던 이 동네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2월 1일자로 노선이 폐지되었다.

나는 왜 이 곳에 왔지.

이 곳엔 아무도 없잖아

온전히 우리잖아.

나는 왜 또 이 모험을 시작했지.

무엇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러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불안이 올라왔단 뜻이다.

내가 또 잘못된 선택을 했구나.

그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이 이렇게 꼬였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잘못된 선택을 해버렸구나.

번듯한 큰 도로가

반짝거리는 새 건물이

광활한 호수공원이

입맛대로 골라갈 수 있는 학원이

우리 아이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내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아무리 멋진 곳을 가도

그곳에서 또 단점을 찾아 낼테니

투덜거릴테니

나는 영영 행복할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도 행복하지 않은 엄마는 재앙과도 같을 것이다.

그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언제까지 불행할 예정이야?

언제까지 비교할꺼야?

도대체 언제까지 신세한탄 할거냐고.

그래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그래봤자 더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지기만 할건데.


그 와중에 오늘 발령이 났고,

내 새 직장은 그나마 이사온 집 근처이다.

사람들은 정말 잘됐다고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이제 이 동네 사람으로 직주근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천천히 구축해 나가야지.

천천히.

조급해하지 말고,

무너진 집을 다시 지어 올리는 것은

다시 공을 들여 집을 지어 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거.

그렇게 해나갈 수 밖에 없으니,

일단 어서 자고 기쁘게 아침을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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