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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05. 2023

내가 누구였는지 가끔 깜빡할 때도 있지만…

지금의 나도 좋다.

첫째를 등교시키고 오전 9시 30분쯤 느지막이 어린이집에 둘째를 등원시키러 가는데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배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교과서 심의위원 해본 적 있냐는 문자였다.


2016년에 2015 개정교육과정 교과서를 집필한 적이 있다.

작년에도 출판 제의를 받아 숨 막히는 집필 작업을 했었다.

학교도 다니고 있었고, 남편도 매일 집에 늦게 왔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둘째는 에라 모르겠고 첫째는 학교에서 전화 오고…

울고 싶어도 울 시간조차 없었던 작년(그렇지만 화장실에 앉기만 하면 울었던)

초단위로 계획을 세워 살아야 했던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의 내가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작년의 나는 분명 불행했다.

올해의 나는 행복한가.


아무것도 못하던 둘째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

둘째가 “엄마, 엄마“하면서 애교 부리는 모습,

좁아터진 어린이집을 퇴소하고 용기 있게 가정보육을 하다가 고르고 골라 간 어린이집을 너무나 좋아하는 둘째를 보며

나는 분명 행복했다.

그리고 하교 후 무려 낮 1시에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첫째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나,

항상 첫째의 사회성이 고민이었으면서도 출근하랴 책쓰랴 살림하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작년의 나를 생각하면

첫째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3월은 분명 행복했다.


그런데 그 문자가 온 거다.

내가 누구였는지.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내 커리어가 뭐였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한 10초간 문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맞아, 나 그런 일도 잔뜩 했었지.

그런 일에 제의받는걸 무척이나 기뻐했었지.

내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내가 쓰임새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것 같아서,

결과물이 딱 나오고, 그 결과물로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좋아서.

그래서, 이 힘든 두 아들을 낳고 키우며,

이 아들들이 내가 하고자 했던 일에 “방해”가 된다고 얼마나 속상해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렇게 능력이 많은 사람인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이것밖에 할 수 없어.

내가 나갈 수 있는 거리는 이것 밖에 안돼.

나는 도태되고 말거야.

그런 생각에.

그럼에도 작년 말 휴직원을 냈을 때 얼마나 그 휴직이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정말로, 말도 안되게 지쳐있었으니까.


이렇게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토록 일에 열심히였던 나도 분명 좋았고

엄마로서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좋다.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고

두 아들이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온전히 지켜보고

집을 정갈하게 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때론 이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생각도 하지만,

너무 멀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또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또 나대로

각자의 속도로 어떻게든 성장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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