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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23. 2023

내가 성장했음을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점

남편은 여전히 둘째를 보며 혀를 찬다.

일주일에 둘째를 주말에만 겨우 보면서, 그렇게 혀를 찬다.

나는 남편에게 둘째가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어대지만 남편은 표정변화가 없었다.

아,

우리 남편이 우울증이구나.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처럼.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4살이 된 우리 둘째는

기특하게도 일반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서, 두 시간 놀고 두 시간 낮잠을 자고 하원한다.

등원 거부도 없고, 되려 어린이집을 좋아한다.

물론 또래 관심이라든가, 어린이집 활동에 대한 재잘거림은 일절 없지만,

그래도 너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배우기도 하겠지.

적어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사진 속의 둘째 모습은 그렇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둘째는,

내가 워킹맘에 독박육아를 하던 지난 2년 동안 나에게 벌과 같은 존재였고,

나는 도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런 아이가 나에게서 태어났냐고 하늘을 원망했다.

그리고 둘째가 차도로 뛰쳐 들어가면, 그렇게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나는 분명 우울증이었다.


올해 휴직을 하고,

둘째와 천천히 걷고 치료에 매진하면서, 둘째는 어느덧 말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물론 단조로운 억양에, 핑퐁대화는 안되지만, 때론 원하는 걸 얘기해주기도 하고, 때론 그건 아니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치료실에서 매우 협조적인 것을 보며

어쩌면 이 아이는, 정말로 그냥 조금 느린 아이일까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해 보았지만,

하지만 나와 둘째를 위해 아이를 특수학급이 있는 공립 유치원에 보내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애등급을 받기엔 아직 실비로 치료하고 있는 게 많아서 당장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가 장애 심사를 해달라고 하기엔 망설여지지만,

특수교육지원청에서 하는 특교자 심사를 꼭 받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유별난 둘째에게 맞는,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려고 한다.


어릴 때 자폐스펙트럼을 의심했던 첫째는,

저렇게 말썽쟁이인 둘째를 보면서도

어서 둘째가 커서 자기 학교 안에 있는 병설유치원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마음 착한 형아다.

그렇지만 첫째의 학교 병설유치원엔 특수학급이 없고,

있더라도 가능한 한 안 보냈을 것이다.


빨간 스파이더맨 내복을 입은 첫째,

그 옆에 어린이집 원복을 입고 자는(요즘 집착하는 물건이다. 잘 때 꼭 입는다.) 둘째를 보며

낮엔 그렇게 난리였지만,

그래도 너희, 오늘 괜찮은 하루였지?


엄마는 항상 검색하고 계획한다.

그리고 엄마의 성장도 게을리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모두 함께 그렇게 매일 성장할 거야.




거북맘 카페에서 검색하려고 돋보기를 누르니 내가 이전에 검색했던 단어들이 떠올랐다.

부정적인 단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나만큼 우울한 사람이 있는지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내 아이의 장애는, 세상의 많고 많은 불행 중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모든 불행이 관점에 따라서는 기회가 되기도 하듯,

때로는 그다지 불행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저렇게 불평할까 이해가 안 되는 그런 모습을 보듯,

나는 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빛을 찾을 테다.


우리 아들들, 2023년의 남은 봄날도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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