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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ul 12. 2023

41개월에 갑자기 기저귀를 떼기도 한다.

이걸 언제까지 사야 하나 했었는데

41개월 4세지만 덩치가 커서 어딜 가도 5세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 거북이 둘째는 지난주에 갑자기 기저귀를 뗐다.

나는 “뗐다”는 단어를 참 싫어한다.

파닉스를 뗐다, 한글을 뗐다, 이런 표현은,

뭐랄까,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데 허용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라 거부감이 든다.

그런데 웬걸, 둘째 맑음이는 정말로 기저귀를 뗐다.

지난주 월요일 팬티를 입기 시작한 기점으로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

무려 낮잠 기저귀, 밤기저귀까지 순식간에 뗐다.

(며칠 전에 기저귀를 새로 결제한 게 무척 아까워지는 순간)


기저귀와 완전 빠이빠이를 하기 전에는 팬티를 거부해서 이런저런 팬티를 들이내 밀어 봤는데,

보아하니 그 어떤 팬티도 안 입으려고 할 기세였다.

노팬티로 며칠 다니다가, 엉덩이에 먼지가 계속 끼는 것 같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래서 그냥, 미안하지만 뽀로로 팬티를 억지로 입혔다.

그런데 막상 엉덩이까지 쏙 팬티 속에 들어가자,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기 시작했다.


응가할 때도 맑음이가 알아서 변기로 가서 응가를 했다.


요구를 잘할 줄 모르는 맑음이는,

응가를 혼자 하고서도 혼자 씻어보겠다고 욕조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종종 발견되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 응가를 하고 혼자 물을 내리고 하의를 탈의하고 혼자 욕조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니 기특했다.


나는 아이가 기저귀를 이렇게 실수 없이 뗀 게 너무 자랑스러워서 어디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고 싶었지만,

이미 또래 아이들은 기저귀를 진즉에 뗀 상태라, 자랑스러워할 부분도 아니었다.

다만 느린 아이 키우는 단톡방에서나 축하를 받고, 자축하고,

안 그래도 더운 여름에 엉덩이가 가벼워진 맑음이를 보며 혼자 뿌듯해하고, 그정도였다.


맑음이는 아직도 대화가 힘들고, 자기의사 표현이 약한 아이라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자조 능력이 향상되어가는 걸 보면서(상의 탈의까지 혼자서 가능해짐!!)

혹시나 우리 맑음이가 조금 늦고 특이하지만 그래도 장애라는 이름은 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해보고,

내년에 유치원에 가게되면 몰라보게 커있지 않을까, 행복회로를 돌려보기도 하다가도

혼자 선풍기 돌아가는 것을 넋놓고 보고 있거나

리모컨 버튼을 무한 반복적으로 누르며 빨랫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걸 즐기는 걸 보면서 또 고개를 절레절레하곤 한다.


어찌되었건,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기저귀를 뗐다는 건 아주 큰 발전이니까!

축하할 건 축하하자!

그리고 남은 기저귀는 얼른 캐롯마켓에 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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