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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ug 17. 2023

보호자를 한 명 더 데리고 오세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어제는 둘째와 로컬 정신의학과에 다녀왔다.

오은* 박사의 의원에서 부원장으로 있던 의사 선생님이 개원을 한 거라 어느새 멀리서도 오는 병원이 된 우리 집 앞 정신건강의학과.

3시에 예약이라 부랴부랴 하원시키고 갔는데,

웬걸 주차장이 꽉 차서 제일 아래층까지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옆 건물에 주차를 하고 병원에 갔더니 3시 10분이었다.

그러고는 헐레벌떡 올라갔더니 살짝 불친절한 데스크의 직원이 앞에 두 분이 있다며 좀 기다리랜다.


당연히 맑음이는 기다리지 못한다.

산책 가자고 했다가, 이상한 소리를 계속 냈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나는 최근에 맑음이가 꽤 좋아하게 된 트니트니영상을 슬그머니 틀었다.

아이는 좋아하며 조용히 있었다.

어휴, 이렇게라도 조용히 있을 수 있게 된 게 얼마야… 정말 다행이야!! 하며 좋아하고 있을 무렵 아이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하러 들어가서 선생님은 맑음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셨지만, 적절한 대답은 불가능했다.

맑음이와의 불완전한(?) 대화가 끝나자 선생님은 나에게 또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 맑음이에게 젤리 한팩을 주셨는데 그걸 다 먹자 막음이는 진료실을 뛰쳐나갔다.

나는 맑음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그냥 선생님께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고,

치료의 방향에 대해서도 물어보았지만, 선생님은 감통정도 추가하라고 하시고 별말씀이 없으셨다.

서울대에서 받아온 ADOS 결과를 보시고는 이건 고정된게 아니니까, 힘내라 하셨다.

그런 말 정도는, 나도 나 스스로 수백 수천번 했던 말이었다.

통합교육을 위한 소견서를 써달라고 부탁도 했다.

그랬더니 소견서를 쓰면 F코드가 나오는데 괜찮냐고 하셔서, 냉큼 안된다고 했다. 우리는 실비로 상당히 많은 치료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나왔는데

아까 그 데스크에 불친절한 직원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다음번엔 보호자 한 분 더 데리고 오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데, 어쩌면 이것이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책임론의 서막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최근 읽고 있는 자폐 아들의 성장 기록을 담은 책 “우근이가 사라졌다”라는 책에서,

우근이 아빠는 우근이를 믿고 최대한 우근이가 일반 아이들과 어울리고 학교도 스스로 다니기를 바랐지만,

학교 선생님들이 “등교지도를 해주셔야겠다, 하교지도를 해주셔야겠다, 수학여행을 가고 싶다면 아버님이 동행하셔야 할 것 같다 “등등의 요구를 해왔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요구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의 그 어떤 말씀도 머릿속에 남지 않고, 그 데스크 직원의 화난 얼굴과 “다음번엔 보호자 한 분 더 데리고 오세요! “라는 말 밖에 남지 않았던 병원 방문.

괜스레 맑음이에게 화를 내다가, 맑음이의 센터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아니 뭐 애가 그렇게 통제가 안되고 하니까 정신과를 찾지 멀쩡하게 예쁘게 앉아 있는 애면 정신과를 왜 가냐?!!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면서 정신과 데스크에 앉아있다고 하니 어이없다!!

아빠를 일부러 안 데리고 갔냐고, 아빠가 못 오니까 데리고 간 거지,

그럼 한부모인데 애가 자폐 있으면 어쩔 거냐!! “ 등등 마구마구 하소연 대잔치를 하고 나서도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면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맑음이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언제쯤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질까.

나는 언제쯤 주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될까.


궁금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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