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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못난이가 아니에요,
맛난이라고요!

by 오선희

기혼 여성의 요리스타일은 친정 엄마의 것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나 또한 그러하다. 우리 엄마는 소고기 다시다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하는 요리사였다. 그런 엄마의 밥과 찌개를 먹고 자란 나 또한 소고기 다시다, 즉 조미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요리를 완성할 수가 없다. 조미료를 넣는 것이 몸에 안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지극히 감탄고토의 인간이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싶어진다. 달달한 맛을 낼 수 있다면, 조미료의 힘을 기꺼이 빌리겠다. ‘조미료’는 한자어이고, 이와 같은 뜻의 고유어도 있다. 그 이름은, ‘맛난이’. 이 말은, 엄마 세대의 어르신이 어렸을 때, 시골 동네에서 한 번은 만났음 직한 여자 아이의 이름 같기도 하다. 그래서 참 친근하다.


발음을 잘못하면 ‘못난이’가 되어 버리는 이 ‘맛난이’는 ‘맛을 돋우기 위하여 음식물에 넣는 조미료의 하나.'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두 번째 뜻은 ‘화학 조미료’, 세 번째 뜻은 ‘맛있는 음식’이다. 조미료를 넣어야 찌개도 무침도 볶음도 맛있어진다는 나의 생각은 과연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돋우어야 하는 것’이 어찌 ‘맛’뿐이랴, ‘분위기’도 돋워야 하는 법. 20대의 나는 무슨 사명감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늘 분위기를 돋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 5:5 미팅에 나가 과하게 분위기를 띄우려 사회자 역할을 도맡아 하다가 혼자만 커플이 성사되지 못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난 맛난이가 되려다 못난이가 되어 버린 것 같았었다.


그때부터 낄끼빠빠를 목숨처럼 지키며, 초대 받아서 간 자리에서도 시시각각 분위기를 살피며 빠져야 할 시간을 재곤 했었다. “저 이만 가볼게요.”라고 말했는데, “아, 가시게요? 조심히 가세요”라는 상대의 말을 들으면 ‘거 봐, 내가 집에 가길 바랐던 거야…’라며 듣지도 않은 상대의 속마음을 지레짐작하고 말았다. 누가 봐도 확증편향하는 자세. 아 생각해 보니, 이게 진짜 못난이 같은 짓이었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진짜 멋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론 무게를 내려놓고 까불이가 되어 보기도 하고, 진중한 자세로 경청함으로써 조용히 위로를 건네는, 귀가 선한 이가 되어 보기도 하는 게 맛난이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 맛을 아는 사람도, 가만히 듣는 맛을 아는 사람도 맛난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에 아주 작은 맛난이가 되었으면 한다. 맛난이는 요리의 주재료가 될 수 없듯이 다른 이와 관계를 맺어 가며 대화를 하는 날들은 내 삶 전체에서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찾아주는 귀한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맛난이가 되어 주리라.


유독 기운이 쭉 빠지는 날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함께 사는 남자가 내 노래에 3도 화음을 얹어 부르기 시작했다. 묘한 오기가 생겼고, 그의 음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내 음을 매우 정확히 내려 애썼다. 그랬더니 우리가 보기에도 꽤 괜찮은 화음이 만들어졌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손끝으로 음의 높이를 짚어가며 노래 반절 정도를 끝내고 나니, 이러고 있는 우리가 너무 웃겨 순간 기분이 확 좋아졌다. “오, 이거 괜찮은데? 기분이 안 좋을 땐, 화음을 맞춰보라고 해야겠어! 캠페인이라도 해야겠다고!”라고 말했다. 어머니들께서 노래교실에 다녀오시면 기분이 나아지시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별볼일없었던, 아주 심심했던 내 삶이 아주 맛있어지는 순간이었다. 내 노랫가락에 화음을 얹어 주는 그대도 나의 ‘맛난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맛을 내는 조미료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삶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별거 아니었는데 내가 씩 하고 웃었다면, 나를 웃게 한 그 ‘맛난이’를 기억해 보자. 기분이 우울해질 때, 그때 그 ‘맛난이’를 다시금 내 삶에 가미하면, 우리 삶의 밥상엔 아주 맛난 밥이 차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맛있게 먹으면 된다. 맛있게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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