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유튜브에서, ‘옛날옛적에’를 보게 되었다. 배추도사, 무도사가 구름 타고 나와서 옛날 얘기를 들려 주고, 은비 까비가 착한 일을 하러 이곳 저곳을 누비며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만화 프로그램이다. 어린 시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프로그램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후로, 이 영상은 요즘 내 야간 업무의 동무가 되어 주고 있다.
이 옛날이야기들은 플롯이 단순하고, 주제도 결국은 권선징악이라, 뭐 특별할 것도 없건만, 오랜만에 보니, 너무 흥미진진했다. 어떤 이야기는 빌런의 반성으로 급하게 마무리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왕자님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상황을 오해하고 섣불리 목숨을 끊은 백일홍을 보았을 땐,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이 영상들에 빠지지 않고 달린 댓글들이었다. ‘어린 시절이 그립다’, 더 나아가 ‘그때는 계셨던 부모님이 지금은 계시지 않아 슬프다’와 같은 댓글들이었다. 또, ‘천년 여우’ 이야기에 달린 댓글엔, ‘이 이야기를 실사화하면 여우는 카리나인가?’라고 해서, 빵 터졌다. 오래 전 만들어진 컨텐츠를 다시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렇듯 울다가 웃다가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들과 글쓰기 공부를 진행하면서, 가끔 나는 물건에 상상력을 더해 보라고 말한다. 창밖 너머에 있는 놀이터 미끄럼틀에 그려진 판다 그림을 보면서, 내가 먼저 상상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판다 한 마리가 저쪽에서 대나무를 뜯어 먹고 있는 거야. 그 아이는 원래도 판다를 좋아해서 몇 시간 동안 그 판다와 신나게 놀았대. 그런데 그때 들리는 소리 ‘얘야, 일어나라, 학교 가야지.’ 어머, 꿈이었던 거야. 근데 이 아이는 꿈이 너무 생생해서 확인하고 싶었어. 놀이터에 가 보았지. 그랬더니 전에는 없었던 판다 그림이 미끄럼틀에 그려져 있는 거야.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렸어. ‘얘, 나야, 어제 우리 재미있게 놀았잖아, 지금 내 목소리는 너만 들리는 거야.’ 아이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대.”
진짜 다 즉석에서 만든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듣다가, 한 어린이가 피식 웃는 순간이 있었다. 그건 바로 미끄럼틀 그림의 판다가 ‘얘, 나야, 어제 우리 재미있게 놀았잖아, 지금 내 목소리는 너만 들리는 거야’하고 말한 부분이었다. 오오, 어린이들의 웃음 포인트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구나, 뭐였을까? 재미있게 놀았다는 부분? 아니면 판다와의 비밀이 생긴 부분? 아무튼 어린이들을 웃음짓게 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었다. 기승전결이 잘 맞지 않는 이야기임에도 어린이를 웃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배추도사 무도사, 은비 까비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도 충분히, 과거의 나를 웃겼으리라, 재미있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 안에는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 사랑받는 내용이 나와 있어,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다. 약아빠지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야기에서만큼은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우리말 ‘곰살궂다’는 ‘태도나 성질이 부드럽고 친절하다.’, ‘꼼꼼하고 자세하다.’라는 뜻이다. 곰살궂은 사람이 결국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당연한 진리를 품에 꼭 안고 살아가겠노라 생각했다.
이 깨달음은 나의 진로 설정에도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할머니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될 때, 나는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 다양한 어린이들을 만나고 싶은데, 이때 나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곰살궂음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물건 하나도 자세히 설명하고, 아주 짓궂은 질문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야지. “할머니는 왜 이렇게 뚱뚱해요?”라고 하면, “할머니는, 살이 찐 게 아니야, 곰살이 찐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어야지. 이런 대단한 할머니가 꿈인데, 지금부터 곰살을 찌워나가야겠다. 제발 다른 살 말고, 곰살만 찌워야 할 텐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