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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사북 자리

by 오선희

저녁 6시 30분에 TV 앞에서 만나. 요즘 남편과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시간이 되면 소박한 밥상을 차려놓고 야구를 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요즘 상승세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경기에 시선을 고정한다. 이러다가 질 것 같으면, ‘에라이’ 한 마디 내 뱉은 후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밤산책을 나간다. 야구 경기의 결과가 밤 산책의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생활은 야구가 폐막하는 10월까지는 계속 될 것 같다.


야구는 부채꼴 모양의 경기장에서 이루어진다. 부채꼴의 아래 가장 뾰족한 부분에 타자가 서고, 매서운 눈으로 기회를 엿보다가 투수가 던진 공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받아치면 깡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하늘을 가르고 멀리 날아간다. 야구는 결국 공격 기회일 때 점수를 내야 하기 때문에, 타자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타자가 서 있는 그곳도 경기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이다. 우리말에는 ‘사북’이라는 말이 있다.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의 아랫머리나 가위다리의 교차된 곳에 박아 돌쩌귀처럼 쓰이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부채를 활짝 펼쳤을 때의 가장 좁아지는 부분이 바로 사북인 것이다. 또 이 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타자가 서 있는 그곳이 부채의 사북 자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사북 자리에 서면 부채꼴로 펼쳐진 경기장 전체가 보인다. 내야에서부터 저 멀리 외야까지. 더 나아가 홈런의 꿈을 안고 외야 너머의 관중석까지 눈길을 준다. 인생의 사북 자리에 설 때도 이렇듯 넓게 그리고 멀리 바라봐야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10년치 계획은 세워 놔야 홈런을 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해내자 해내자' 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정말 그래야 할까?


3타수 3안타의 선수가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이 선수는 네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칠 확률이 높을까, 낮을까. 그동안 쭉 잘했으니까, 이번에도 잘할 가능성이 높을까. 아니면 그동안 쭉 잘했으니 오히려 한 번은 못할 일이 남은 걸까. 야구를 볼 때면, 늘 드는 생각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공격 기회, 이미 주자가 1루와 2루에 있고, 원 아웃의 상태. 타석에 있는 선수는 감독이 기대하며 내보낸 대타 선수다. 이 대타 선수는 그동안 득점권에서 안타를 많이 쳤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결과는 땅볼. 결국 그 공은 병살타가 되어 쓰리 아웃이 되었다. 점수를 내지 못했다.


대타로 나선 선수는 타석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믿어준 감독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담감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 선수에게 또 기회가 찾아올까. 사람들은 한 번 실망시킨 사람을 몇 번이나 더 믿어줄까. 불안감에 사로잡혀 그 이후로도 계속 그렇다 할 성적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야구를 보다 보면, 아.. 막 ‘해내야지 잘해야지’하는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다른 경기. 타자가 힘껏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하늘 높이 붕 떴다. 수비수가 이 공을 잡으면 타자는 아웃되는 상황.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웃을 예상했다. 공을 친 타자도 마찬가지였다. 타자는 1루로 설렁설렁 뛰었다. 아니 근데 웬걸. 수비수가 공을 떨구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걸 보고 타자가 그제서야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지만, 수비수가 공을 다시 잡아 1루로 던져 타자는 아웃되었다.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처음부터 전력질주했다면 살아남았을 텐데. 이걸 보면 또 늘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구나 싶다. 사북 자리에서만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1루로 달려가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 내 인생의 사북 자리도 한 곳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살아 숨쉬는 모든 곳, 삶의 곳곳을 사북 자리로 삼고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뜬 곳에서부터 나의 사북 자리는 시작된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뜨기 힘들지만, 괜스레 입으로 “잘 잤다”라고 말해 보았다. 하루의 시작부터 부정적이고 ‘거북’하기 싫어서 ‘사북’ 자리를 떠올린 점, 아주 기특하다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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