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퍼스널컬러는 ‘주황’. 퍼스널컬러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 색깔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물건을 살 때 무의식중에 그 색깔을 고른다면, 그게 그의 퍼스널컬러가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의 퍼스널컬러는 주황임에 틀림없다. 주황색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날엔 유독 사진이 잘 나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귀여운 아이템 중에서 주황에 눈이 가는 것도 내 퍼스널컬러 이론을 뒷받침한다.
주황빛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렌지, 당근, 진한 호박죽, 찜질방의 황토벽… 그리고 노을. 노을빛이 하늘에 가득한 시간은 내가 참 사랑하는 시간이다. 일의 능률도 그때부터 오르기 때문에, 나의 하루는 그 시간부터 시작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면,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도, 물건에도 그 빛이 옮아간다. 기분 좋은 빛깔로 온 세상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노을’하면 해 질 녘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노을’의 뜻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아침에도 ‘노을’은 뜬다는 말이다. 실제로 사전에도 ‘아침노을’, ‘저녁노을’이 따로따로 등재되어 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의 시작과 끝에 모두 ‘노을’이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시작은 동쪽에서, 끝은 서쪽에서 마무리되는 노을의 완결성이 멋지다.
하루를 한 사람의 일생으로 본다면, ‘노을’이 지는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이 저물어 가는 시기라 생각하게 된다. ‘노을’은 활기찬 청년의 시간이 아닌, 활기를 잃어버린 장년의 시간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노을은 사람을 서글퍼지게 만든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하는 노랫말처럼,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와 무상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침노을’이라는 말을 알게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이제 더 이상 ‘노을’은 저물어 가는 인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롭게 시작하는 삶, 어린이의 삶을 상징한다고 믿어도 된다. 지난 시절의 일들은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노을에서 배울 수 있다.
‘노을’은 ‘놀’이라는 준말로도 쓸 수 있다. 그 ‘놀’이 ‘놀자’의 ‘놀’ 같아서 괜스레 신이 난다. ‘아침놀’이 생길 때, 하루의 ‘놀’ 준비를 하고, ‘저녁놀’이 생길 때, 다음날의 ‘놀’ 준비를 하는 시간들이 정해진 것 같다. 자, 어떻게 놀아볼까. 한바탕 놀아보는 자리에서 나는 절대 ‘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NO 을(노을)’이다. ‘을’이 아닌 ‘갑’, 내 삶의 주인된 마음으로 적극적이고도 주체적으로 놀아보자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즐거우면 장땡인 어린이처럼, ‘아침노을’ 같은 어린이처럼.
불혹을 넘긴 나는 ‘저녁노을’이 아니라, ‘아침노을’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도 즐거움만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고, 나이 눈치 보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 놀이터의 어린이들처럼 돌고래 소리를 낼 수도 없고,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고 킥보드를 탈 수는 없지만, 바람 타고 날아가는 비눗방울을 잡으러 뛰어갈 수는 있다. 소소한 삶의 재미를 찾을 때, 그 재미 안에서 도전의 기회도 샘솟을 수 있다고 믿는다. 5월에는 어린이날이 있다. 어린이처럼 활기차게 떠오르는 ‘아침노을’ 같은 어른들의 날도 5월에 하루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