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꽃잔치가 끝나고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꽃잎이 떨어지는 시기다. 나무 하나에 가득 분홍 꽃잎을 매달아 반짝반짝 빛나더니, 이제는 그 꽃잎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여기저기서 ‘어머’와 같은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핸드폰을 들고 카메라에 담으려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눈이 바람과 함께 마구마구 뿌려진다면, 그건 '눈보라', 마찬가지로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많은 꽃잎’을 '꽃보라'라고 한다. 어떤 낱말이든 ‘꽃’이라는 말과 만나면 참 예뻐지는 것 같다. ‘눈보라’는 생각만 해도 싫은데, ‘꽃보라’는 너무 좋아 '찍어찍어 사진 찍어'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번 봄꽃은 유독 더 벅차게 예뻤다. 지나온 겨울이 힘들었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면서 나한테 뭐가 달라졌나? 그냥 요일 감각 없이 계속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그런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언제나 체온이 약간 떨어져 바로 어제까지도 후리스를 입고 있었어서, 봄이 온 걸 모르고 있다가 맞이한 봄꽃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2025 버전 꽃보라는 내 인생 베스트였다.
웅크리고 앉아 있던 시간 속에 봄이 왔다. 중요한 원고를 넘기자마자 이때다 하고 통증이 왔다. 등 한복판이 결렸다. 근육이 딱 뭉친 것처럼. 그래서 의도적으로 등을 펴고 목을 죽 늘였더니 그제서야 보였다. 꽃보라가. 꼿꼿하게 섰더니 꽃보라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뭔가 열중했던 일이 끝나면 마음이 한없이 헛헛해진다. 얼얼하고, 멍하게 된다. ‘내가 무얼 위해 달려왔던 걸까. 난 잘 해낸 건가. 결과물이 나올 때까진 끝난 것도 아니네.’ 뭐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기뻐하거나 신날 틈을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때 꽃보라가 ‘멍때릴 시간이 어딨어, 이거나 봐~!!! 옛다’ 하면서 이리저리 운동장 뛰어다니는 아이들처럼 나다닌다. 긴 호흡의 일을 해야 한다면, 꼭 겨울에 시작해서 꼭 봄에 끝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일을 다 마친 후, 꽃보라 속에 있으면, 멍할 새 없이 먹먹해질 테니.
바닥에 떨어져 점점이 박힌 꽃잎은 원래의 땅의 무늬처럼 보인다. 그러다 바람이 불면 홀로그램처럼 그 무늬를 바꾼다. 꽃잎은 가벼워서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며 봄을 만끽하는 것 같다. 그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땐, 인간들에게 봄의 절정을 선물해 주고, 이제 바닥에 떨어져선 지들끼리 몰려 다니며 봄을 즐기는 것이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을 믿으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꽃잎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것을 예상해 내 손은 아래에서 위로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꽃잎은 예측 불가능하게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옆으로 왔다갔다 하여 날 빈손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까르르. 볼품없는 내 몸짓에 웃음이 절로 났다. 아마도 꽃잎을 잡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니라, 꽃잎을 잡는 도중에 이미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생기는 게 분명하다.
꽃은 이렇게 지고 있지만, 다음 꽃들이 반겨주길 기대하며 대기하고 있는 찬란한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꽃들 중 이렇게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장관을 선사하는 꽃은 벚꽃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폭죽 터질 때 쏟아져 나오는 색종이 조각처럼 벚꽃이 분홍 색종이를 가득 담아 폭죽을 터뜨리며 찬란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축제는 시작되었다. 그러니 꽃보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