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색깔로 해석해 내는 자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원곡을 자신만의 색깔로 불러내는 사람에게, 원래 작품을 패러디하여 웃음을 주는 사람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이렇듯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유일함이 나에게 있다면 참 좋겠다.
나는 늘 탁월함에 대해 고민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리고 또 못할까. 내가 좀 더 탁월했다면 더 빨리, 더 많이 일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고민을 했던 것을 보니, 그동안 난 확실히 일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연차가 쌓이고 보니, 내가 모두를 뛰어넘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유일해지자’, ‘특별해지자’ 생각했다.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성공의 마침표는 거기에 찍혀야 할 것 같았다.
판소리는 ‘창’, ‘아니리’, ‘발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리로 풀어내는 ‘창’, 말로 풀어내는 ‘아니리’, 그리고 몸짓에 해당하는 ‘발림’. 그리고 ‘더늠’이라는 게 있다. ‘더늠’은 ‘판소리에서, 명창이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다듬어 부르는 어떤 마당의 한 대목.’을 말한다. 똑같은 춘향가를 불러도, 창자에 따라 조금씩 내용도 느낌도 달라지는데, 그렇게 독특한 방식으로 남들과 다르게 자신의 멋을 살리는 것이 바로 ‘더늠’인 것이다. 외우기도 쉽다. 같은 작품에 나만의 개성을 ‘더 넣음’, 그래서 ‘더늠’이다. (내 생각이다)
강의를 하는 나에게 ‘더늠’은, 솔직해지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솔직해지기가 참 힘들었다. 내가 최고라고,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말해야 먹히는 강의 시장에서 “선생님이 이거 풀어 봤는데, 사실 틀렸어. 내가 이걸 이렇게 저렇게 잘못 생각했더라고.”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의 신뢰를 잃고 무너질 것 같아서, 가끔은 ‘난 잘해’ 허풍을 떨어보기도 했지만, 그건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어색함만 늘었다. 그냥 난 그 문제를 틀렸고, 그 부분이 어려웠고, 솔직히 자신 없었고.. 그런데도 하고 있으니 같이 해보자는 진실된 마음을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또 더 친절해지기로 마음먹은 것도 나에겐 다른 이들과는 다른 ‘더늠’이었다. 예를 들어, 판서를 할 때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또박또박 쓰려고 노력하거나, 지금부터 판서를 몇 줄 할 건지 미리 말해 주어서, 필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학생들이 필기하기 전에 노트나 교재에 적당한 공간을 준비해 두게 하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필기에 목숨 걸었던 나는, 조금만 필기할 줄 알고 아주 작은 공간에 필기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필기 양이 많아져 여기저기 화살표로 쭉 끌어다 다른 공간에 이어 필기하는 게 참 싫었었다. 내가 싫어했던 건 학생들에게도 하게 하지 않아야지 생각하는 마음으로 친절을 조금 더 넣었다. 더늠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더 우스워지기로 했다. 고전 시가 작품을 작가와 연결 지어 외우는 건 참 힘든 일인데, 암기법을 만들 때도 일부러 난 망가지기로 했다. 예를 들어, 득오의 <모죽지랑가>는 ‘오모!(놀라는 표정과 함께)’로 외우는 거다. ‘득오모!죽지랑가’라는 암기 방법을 말해 줄 땐, 일부러 ‘오모!’할 때 더 웃긴 표정을 지었다. 원더걸스 소희 저리가라로 킹 받게 귀여우려는 표정으로.
고등학교 때 판소리 공연을 보는 게 좋았다. 사실 티켓 가격이 저렴해서 클래식 공연이 아닌 판소리 공연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연을 보면 볼수록 클래식이 아닌 판소리 공연을 보기로 한 과거의 나를 칭찬하게 되었다. 판소리 공연을 보았던 첫날 그 공연장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판소리 공연장 객석의 불이 꺼지고 곧 공연이 시작될 듯했지만,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쿵딱! 하는 고수의 북소리가 들리고 무대 한 가운데에 있는 리프트가 작동하더니, 명창 선생님이 무대 아래에서 두둥! 등장했다. 그 명창 선생님 한 명의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은 가득 채워졌고,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쭉 이어지는 그 목소리가 공연장 한 바퀴를 다 돌고 돌아 내 가슴팍에 냅다 꽂혔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 그분의 더늠이 다른 창자에 비해 어떠했을지 난 잘 모르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재능을 펼쳐 더늠을 만들 수 있는 창자가 참 멋져 보였고, 이것이 가능한 판소리 장르도 참 멋졌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약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다. 가이드 라인을 너무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면 약간씩 나만의 더늠을 넣어 일할 수 있다. 업무 메일을 보낼 때 ‘처음 선생님을 뵈었을 때가 한창 추운 겨울이었는데, 이제는 따뜻한 봄이네요. ○○ 관련 파일 보내드립니다.’와 같이 누구보다 따뜻한 더늠을 선보이는 동료를 알고 있다. 매일 똑같은 하루 속에서 지루하다고 느꼈다면 한끗 차이로 달라지는 더늠을 경험해 보자. 똑같은 업무 속에서 자신이 잘하는 것을 또 잘 펼칠 수 있는 더늠을 구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리프트 타고 등장하는 판소리 명창의 모습과 같이 좌중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