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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축없는 인생

by 오선희

맨날 집에 있었던 것을 티라도 내는 듯 여행 하루 만에 내 발바닥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맨발에 크록스만 신고 집앞 슈퍼 나가듯 여행지 곳곳을 누볐으니, 발바닥이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여행 첫날 숙소에 들어와 발바닥을 보았는데, 왼발 두 번째 발가락과 세 번째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물집을 터뜨릴 용기가 없어, 그냥 그대로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양말을 잘 챙겨 신고 운동화로 바꿔 신은 후, 길을 나섰다. 아 그런데 이번엔 뒤꿈치가 아팠다. 나참, 내 발바닥은 왜 이렇게 말캉말캉하여 이곳저곳 탈이 나는가. 둘째 날도 숙소에 들어와 발바닥을 보니, 첫째 날의 물집은 이미 터져 있었고, 아까부터 아팠던 발뒤꿈치에도 물집이 잡혀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운동화로 바꿔 신었는데도, 발바닥이 난리가 난다는 건 내 걸음걸이에 문제가 있나, 아니면 운동화에 문제가 있나 생각하며 운동화를 이곳저곳 살펴보았는데, 내가 신고 온 운동화의 뒤축이 다 닳아 있었다.


그래, 오래 신기도 참 오래 신었던 운동화였다. 별 의식 없이 신어서 몰랐는데, 운동화의 뒤축이 다 닳아서 운동화가 쿠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 발이 생으로 길의 울퉁불퉁함을 고스란히 느껴 탈이 났던 것 같다. 이만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언제 이렇게 신발이 닳았지 생각하며 이 신발로 돌아다녔던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았다. 일하러 갈 때도, 오래 걸으며 여행하는 중에도 이 신발을 신었었다. 20대에는 멋부리려고 높은 굽의 구두도 신었었지만, 허리에 무리가 와서 침을 몇 번 맞은 후로는 포기. 여름이 되면 예쁜 샌들도 신었었지만, 못생긴 발가락이 신경 쓰이고 발 관리가 귀찮아지자 그것도 포기. 그냥 무조건 운동화를 신다 보니, 이렇게나 운동화가 닳았나 보다.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녔던 경험들은 지난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 경험들은 모두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것들이었다. 경험 하나하나가 내 삶을 만들었으므로 그것들은 모두 깔축없는 것들이다. 우리말 ‘깔축없다’는 ‘조금도 축나거나 버릴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긴장되면 땀이 배어 나와, 발바닥에서부터 전해져 오던 축축함.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나 좋은 소식을 들으러 갈 때 신나서 발 동동 굴렀을 때 전해져 오던 진동. 다 스며든 오래된 운동화는 깔축없는 내 인생을 보여 주는 듯하다.


깨끗한 땅을 밟든, 더러운 땅을 밟든, 무엇을 밟고 올라가 어디에 도착하든 그 누구도 내 삶을 ‘깔’ 수 없다. 내 삶을 누구도 깔 수 없다면, 나 또한 그 누구의 삶도 깔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강릉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행사인 단오제에서 밤 늦도록 형광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주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았다. 늦게까지 술판이 벌어지고 이곳저곳에서 담배를 피워대니, 바닥이 깨끗할 리 없었다. 그런 곳을 난 밟기도 싫은데, 그분들은 그곳 깊숙이 들어가 청소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분들의 삶이 너무 고되어 보여서, 순간 연민의 마음을 가질 뻔했다. 물론 그분들이 서로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얼굴을 보고 그 연민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함부로 그분들의 삶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고장의 가장 큰 행사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계신 거라 생각한다. 다만, 주최측이 그분들의 노고를 모른체하지 않았으면, 열정페이로 퉁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 누구도 그분들의 삶을 연민할 수 없지만, 노고를 까내릴 수도 없는 것이므로.


신발 이야기를 쓰자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신발을 자꾸 보게 된다. 저 신발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언제부터 신은 신발일까. 인생은 산다고도 표현하지만, 걸어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들이 신은 신발은 분명 삶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삶의 모든 순간은 버릴 것이 없다. 깔축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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