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 두 자매는 엄마의 상태와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다. 언니와 엄마와 나, 셋으로 이루어진 단톡방에서 엄마는 늘 단답형의 대답을 했는데, ‘ㅇㅇ’이라든가, ‘ㅇㅋ’와 같은 대답마저 없는 날엔 ‘엄마 뭐해?’와 같은 말로 엄마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TV 봐’, ‘밖에서 친구 만났어’와 같은 엄마의 답을 봐야 맘이 편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연락이 안 된다고. 뭐 별일 있겠냐 생각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온갖 형태의 ‘혹시’, ‘설마’ 들이 뒤엉켰다. 역시 엄마네 집에 CCTV를 설치할 걸 그랬어. 예전에 전화를 몇 번 만에 받았었더라. 엄마가 잠들었나… 20분 거리의 엄마 집에 가 보려고, 집을 나서는데, 언니한테 또 전화가 왔다. “엄마랑 통화 됐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해 왜 전화를 안 받았는지 물었다. 엄마에게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엄마가 자주 가는 시장에는 단골 가게들이 있는데, 그 가게 사장님들과 종종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다고 했다. 그중 식당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의 아들이 독립영화 감독이었단다. 그 감독님이 신작을 촬영 중인데, 식당에서 밥 먹는 아주머니들 장면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그 감독님은 자신의 어머니의 식당에 왔고, 우리 엄마도 그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다는 것. 촬영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 핸드폰은 모두 비행기 모드였단다. 대사도 없는 짧은 장면이니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마의 비행기 모드는 길어졌고, 딱 그 순간이 마침 우리가 헐레벌떡 엄마를 찾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엄마의 영화 데뷔가 참 신기하기도 했지만, 순간 세상의 모든 일은 천만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연락이 안 되는 이유 중에, 영화배우가 아닌 엄마의 영화 촬영이 있을 거란 생각을 그 누가 쉽게 할 수 있었겠는가. 휴대전화가 옆에 없었겠지, 무음 모드겠지, 화장실에 있겠지, … 무슨 일 있나, 어디 아픈가 … 등등 몇 백 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생각한 뒤에야 떠올릴 만한, 아니 절대 떠올리지 못할 만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엄마에게 그 영화가 개봉하면 보겠다고 말하면서, 난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참 다행인 마무리였다.
엄마의 안전을 걱정하며 보낸 잠시 잠깐의 시간 동안, 내가 안달 나 있을 동안, 엄마는 ‘하이 큐~’에 맞춰 연기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안달 날 땐, ‘난달’을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말 ‘난달’은 ‘길이 여러 갈래로 통한 곳’이라는 뜻이다. 난달에 있는 여러 갈래의 길처럼, 나 또한 내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로 한 것이다. 흔히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면, 그만큼 걱정과 고민도 많아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그 반대다. 긍정적인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 즉 행복 회로를 돌려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걱정 말고, 고민 말고, 긍정적인 상상을 해 보면 어떨까. 엄마가 또 연락이 안 되면, ‘다음 작품에 캐스팅되었나?’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걱정돼서, 계속 연락은 해 보겠지만. 그러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쭉 이어 붙여, 현 상황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가능성까지 긍정적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이 ‘난달’이고 내 앞에는 여러 가능성의 길들이 펼쳐져 있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다. 기꺼이 시간을 들여 흥분되는 일을 선택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엄마와 연락이 되지 않았을 때, 정말 무서운 생각의 절정에도 나는 다녀왔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엄마는 내가 생각한 가능성의 너머에서 기가 막힌 경험을 하고 왔다. 이렇게 재미있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곳을 ‘난달’로 믿어 보자. 아니 ‘난달’로 만들어 보자. 어떤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지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공평하다. 현재 상황에 나조차도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려 할 때, 가능성에 가능성에 가능성을 더해,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한바탕 재미있는 일들을 꾸며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만약에 영 아니다 싶으면 다시 난달로 돌아와서 다시 마인드맵 그리듯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난달’은 어차피 여러 길이 통하는 곳이니까. 내가 서 있는 곳이 ‘난달’이라면, 여러 가능성이 통하는 곳이 바로 ‘나’니까,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