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과 싸울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장난을 칠 때 ‘난 지금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난 지금 이 상황이 웃겨요, 부디 당신이 기분 상하지 않길 바라요, 나처럼 웃어 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입술을 옴짝거리며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리는 장난 표정이 탑재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약올라할지언정 화를 내지는 않기를 바라며 장난 시동을 거는 것이다. 장난을 상대방이 이해 못해서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 항상 새물새물한 표정으로 장난을 쳐야 한다. 장난, 그거 뭐 안 쳐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좋은 것. 식기세척기나 음식물처리기만큼이나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바로 ‘장난’이라 생각한다. 우리말에는 ‘새물새물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입술을 약간 샐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잇따라 웃다.'이다.
친구들 사이의 일명 ‘깔깔이(웃기는 애, 실없는 애 등등)’를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 늘 새물새물하고 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웃고 있으면, 그 무브를 본 친구들은 모두 장난의 징조를 느끼고, ‘짜증나, 킹받아, 못 살아’와 같은 말을 하며 한바탕 웃는다. 내가 먼저 새물새물하고 있으면, 내 웃음의 물결이 친구들에게까지 퍼져 나가는 것 같다. 잔잔하던 대화 분위기에 한순간 기분 좋은 물결이 치는 듯하다.
초등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도, 웃음 띤 장난은 필수다. 수업 시간이 길지도 않은데,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의 기분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수업 전에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고 왔다든가,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자신의 말이 허공에 흩어졌을 때, 아이들은 쉽게 낙심한다. 작고 소중한 영혼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가 먼저 새물새물하며 장난을 친다. “선생님이 호두 줄까?”하면서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쭈굴쭈굴해진 턱을 가리킨다. 그 모양이 꼭 호두 같기 때문에, 어느새 아이들은 씨익 웃는다. 성공이다. 그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늘 그렇듯 “있잖아요”라는 말과 함께. 아직은 나의 장난 섞인 새물새물함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가슴팍에 붙은 밥풀을 보며 ‘그거 언제 먹으려고 붙여 놨어?’라고 물으면 ‘아, 이거 이따 먹으려고 붙여둔 거야’라고 되받아치는 티키타카는 장난의 고전이라 말할 수 있다. 또 상대방의 몸통 즈음을 가리키며 뭔가 발견한 듯 ‘어?’하고서 상대방이 아래를 쳐다보면 ‘인사 잘 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인 장난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자기 옷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 뒤 상대가 가까이 오면 이마에 살며시 뽀뽀를 하는 장난도 나왔다. ‘인사 잘 한다’ 장난의 멋진 기출 변형이다. 모두를 기분 좋게 하는 장난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웃음’이라는 것은 대화의 처음, 중간, 끝.. 어디에 와도 어색하지 않다. 살짝 웃으며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방은 그 웃음을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의 도입부쯤으로 생각하며 기대하게 된다. 또 이야기를 하던 중에 살짝 웃으면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웃으면 상대방도 웃으며 반응하게 된다.
사실 박장대소 했던 일들도 집에 돌아와 복기해보면 그다지 웃긴 일이 아니었던 적이 많았다. 그건 새물새물했던 일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소리 없이 새물새물했던 일은, 그 대화의 좋았던 분위기로 인해 더욱 새록새록 기억 남는데, 그 기억은 집에 돌아와서까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 웃음은 시각적인 것에 가까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웃음이 촉각적으로 기능했달까.
편안한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장난치고 싶은 본능, 그 본능에서 피어나는 새물새물. 그 웃음은 옹달샘에 물이 퐁퐁 솟아나듯 소소하지만 끊임없다. 재채기와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했던가, 장난치고 싶을 때 나오는 새물새물함도 감출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내 입가에 그리고 콧구멍에서 삐져나온다. 휴대 전화 화면에 친근한 사람의 이름이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컨셉으로 장난질을 해 볼까, 고민하는 나는 전화를 받기 전부터 이미 즐겁다. 아마 나는 죽기 직전까지 장난을 치다가 혹은 장난치려는 궁리를 하며 새물새물할 것 같다. 그렇게 일생동안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날 보며 함께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보다 더한 해피엔딩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