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가해자의 혀를 약 1.5cm 절단하였다는 이유로, 6개월간 교도소에 구금되었던 최말자 할머니의 사건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교도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지만, 반기는 사람은 없었고, 혼자 집을 나와 살아야했다. 이후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고, 혼자서 어렵게 삶을 이어오셨다. 그러던 중 2018년 미투 운동이 확산되던 분위기에 힘 입어 재심 청구를 하게 되었고, 얼마 전 무죄 판결을 받으셨다. 최말자 할머니는 사건 발생 61년 만에, 그녀의 나이 일흔여덟이 되어서야 범죄자라는 오명과 억울함을 씻게 되었다.
1964년인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다 해도, 당시의 판결은 너무도 후졌다. 성폭행이 미수에 그쳤고, 겉으로 보기에 훨씬 큰 상해를 입은 쪽이 가해자였기에,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가해자의 상처를 두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폭행은, 아니 모든 범죄는 저지르기로 마음 먹은 데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도둑질을 하기 위해 남의 집 문을 땄지만, 아무것도 훔쳐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범죄는 성립된다. 이미 문을 여는 순간부터 도둑질은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경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의 말과 행동이 그 마음을 진실되게 드러내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는 세상 살면서 어찌 진실만을 말하고 살겠느냐 할 것이다. 맞다. 나 또한 거짓을 말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말’의 힘이다.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말’은 힘이 굉장히 세다. 그러기에 내가 한 말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설사 말과는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지키는 과정이 반복되며 우리는 말과 마음이, 행동과 생각이 비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사회인의 모습이 아닐까.
얼마 전, 80대 노부부의 집에 든 강도는, 그 노부부가 거래하던 은행의 직원이었음이 밝혀졌다. 은행 직원은 이 노부부가 거액을 인출한 것을 알았고, 그 돈에 욕심이 생겨 한밤중 노부부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 이 노부부는 직원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은행에서 안전하게 돈을 보관해 준다는 말, 거래하는 고객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겠다는 말… 그러나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은행에서 돈을 인출했으니, 이제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건가? 그래서 손수 훔치러 가서는, ‘우리 은행에 돈을 계속 맡기지 그랬어? 돈을 인출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어’라는 뜻을 시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신뢰했던 이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법원과 검찰은 최말자 할머니에게 거듭 사과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당신의 억울함보다 후손들의 안전을 소망하셨다.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온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후손들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나는 순간 엄청 큰 어른을 본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서 승리자를 보았다. 할머니의 승리는 할머니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 곁을 지킨 사람들, 7만 6,790장의 지지 서명서가 있었으니, 승리는 그들과 함께 누려야 할 것이다.
그들의 서명은 할머니를 지지하겠다는 표현이자,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우리가 우리를 지키는 것의 당연함을 지지하겠다는 표현이다. 또한 그들도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말 ‘말갈망’은 ‘자기가 한 말의 뒷수습’을 뜻한다. 인간이라면 응당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말갈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말이 어떻게 쓰이기를 ‘갈망’하는지 잘 생각하고, 한 단어라도 한 음절이라도 책임을 다해 내뱉어야 한다.
할머니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검찰과 법원은 자신들이 사명을 가지고 읊었던 근무신조의 ‘말갈망’을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그들의 말갈망을 대신 이루어내셨다. 그때 당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못했던 여성들이 비단 말자 할머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용기를 내어 억울함을 씻어내셨듯이 많은 억울함들이 풀리길, 후진 판결들이 이제라도 다른 결론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