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한다. 내 볼에 뽀뽀하고 도망간 그 남자애를. 하얀미술학원이었던가, 내가 유치원 대신 7살을 보낸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엔 얼굴이 하얀 남자애 하나가 있었다. 친구들하고 장난도 잘 치고, 선생님의 질문에도 너스레를 떨며 대답도 잘하던 아이였다. 그때 나는 어렸지만,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었다. 하얗고 잘생긴 그 남자애의 말에는 선생님들 모두 웃음이 후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렇게 멀리서 그 남자애를 쳐다보는 걸 좋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가방을 메고 서 있는데, 저 멀리서 그 남자애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것도 나를 향해. 열 걸음 앞, 다섯 걸음 앞, 그리고 코앞까지 와서는 갑자기 날 넘어뜨렸다. 그리고는 내 볼에 뽀뽀를 쪽. 그러고 그 남자애는 도망가 버렸다.
너무 놀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선생님들은 내가 넘어진 것만 보셨던 터라, “괜찮니?” 하며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그럼 그날부터 1일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뽀뽀 이벤트를 날려 준 건가 싶기도 하다. 인기 많은 그 남자애는 제1회, 제2회.. 뭐 이렇게 뽀뽀 이벤트를 열 만도 하다고 생각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뽀뽀가 맞았나 싶기도 하다. 그 아이는 볼뽀뽀를 계획했던 듯싶지만, 달려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였는지 그애의 뽀뽀는 내 귀 언저리에 닿았다. 뭔가 귓속말을 하려고 했던 건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말을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다.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 반지하 집에 살았는데, 학교를 마치고 그 집으로 걸어가다 보면, 아주 예쁜 빨간 벽돌집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터벅터벅 걸어가다 그 집 창문에서 날 따라 움직이는 까만 눈동자를 발견했다. 아주 두꺼운 안경 너머의 눈동자를. 눈이 매우 안 좋아서 쟤가 누군가, 쟤가 걘가 하며 봤을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우리 집 대문 사이에서 사탕 선물과 편지를 발견한 순간, 그 눈동자가 추적하던 것은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아 기분 좋았던 것도 잠시, ‘얘가 우리 집을 아네? 여기까지 온 거면 우리 집이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이라는 것도 알았겠네.’ 생각이 들어 매우 우울했었다.
그렇게 난 그 아이의 선물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 고백을 흘려 보냈다. 뭐 그 이후로 그 아이도 재도전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좋아하는 감정은 딱 그 정도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뭐 괜찮았다. 누가 좋아한다고 하면, 괜히 창피하고, 그래서 더 화내고 도망가고 했던 시기였으니까.
이렇게나 왕년에 인기 많았다며 이런 저런 스토리를 나불대며 신나 있는 나를 바라보던 남편이 ‘풉' 하고 웃었다. 어라, 비웃어? 괜히 발끈해서는 거울을 들여다 봤는데, 얼굴이 포동포동하고, 잡티도 그득한 채로, 후줄근하게 있는 마흔 중반의 아줌마가 보였다. 그러고선 그날 밤 꿈을 꿨다. 솔로지옥에 출연한 나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해서 천국도에 가지 못했고, 혼자 지옥도에 남아 거울을 보는데, 아까 잠들기 전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악몽이었다. 악몽을 꾸었다. 뽀뽀를 받았던, 사탕을 받았던 꼬마 시절의 나를 괜히 떠올려서 이런 악몽까지 꾼 건지. 떠올린 것까진 좋았는데 괜히 나불댔다가 비웃음을 당한 충격으로 이런 악몽까지 꾼 건지 모르겠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커서 앞으론 입조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