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질하는 챔피언

by 오선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골드메달리스트’라고도 하지만, ‘올림픽 챔피언’이라고도 부른다. ‘챔피언’, ‘세계 1등’ 진짜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말이다. 지금 춤추는 사람이, 음악에 미치는 사람이, 인생 즐기는 사람이 챔피언이라고 어떤 가수는 말했지만, 즐기고 춤추는 사람이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어딘지 좀 찜찜하다. 진짜 챔피언은 시상대에 올라가 있는데… 시상대 구경도 해 보지 못한 내가 그저 인생을 즐겁게 살았다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챔피언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챔피언은 챔피언다운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소망하는 일에 엄청 많은 시간을 들였고, 끊임없이 시도해 보았으며, 자기의 실력을 보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여기서 핵심은 ‘계속’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다. 마치 낚시꾼이 챔질을 하듯이. 우리말 ‘챔질’은 ‘낚시에서, 고기가 미끼를 건드려서 찌가 움직일 때 낚싯대를 살짝 들어 올리는 일’을 의미한다. 챔질을 잘하는 사람이 진정 챔피언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챔피언의 자질, 그게 바로 ‘챔질’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낚시터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까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는 인내심이 대어를 낚게 만들어 줄 거라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기만 한다고 기회가 오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챔질을 시도해야 물고기를 낚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챔질이 가능하려면 오랜 기간 낚시터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쇼트트랙을 보았다. 수많은 선수들이 기회를 엿보면서 인코스 아웃코스 노리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왜 저렇게 위험하게 끼어드는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건 그들이 보여 준 챔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지더라도 해 보는 거다. 챔질을 시도한 순간, 물속 물고기들을 모두 각성시켜서, “얘들아, 낚시꾼이 왔어! 조심해!” 하고 물고기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고, 그래서 그 물고기들이 한동안 몸을 사리느라 낚시꾼의 바늘엔 얼씬도 안 하고, 그러다가 그 물고기들이 방심하기까지 기다리려면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겠지만, 챔질을 해 보는 거다. 이 일련의 행동들을 ‘시간 낭비’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챔질을 할 땐 성공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 모든 과정을 견뎌낼 에너지가 생기는 걸 수도. 쇼트트랙 선수들도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달려야 하고 속도를 다시 붙이기 어려워지겠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챔질’과 같은 추월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라면 열한 번 찍겠다는 마음가짐과도 닮았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도 나름의 ‘챔질’이다.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 글쓰는 사람과 함께, 글쓰는 곳에 진득이 있는 것이다. 글을 진짜 잘 쓰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내가 엄청 부족해 보여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는 덕분에, 나도 글을 잘 쓰지는 못할지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순 있을 테니, 매주 쓰는 글은 나의 ‘챔질’인 셈이다.


사실 함께하고 싶은 출판사에 메일을 보낸 적도 있었다. 이러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인데, 한 번만 제 글을 읽어봐 달라고 메일을 보냈었다.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정중한 거절 메일을 받았다. 그런데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내가 챔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보낸 메일을 한 번 더 읽어 봤다. 괜히 부끄럽기도 한 마음에 얼굴이 벌게져서 썼던 그 메일에는, 내가 이런 말을 썼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만약 출판이 어렵더라도, 글로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어느 날 이 문장이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고, 마감 날짜에 기쁘게 스트레스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교통이 편리한 곳에 사무실 하나를 얻어 가운데에 커다란 탁자를 두고, 글 쓰는 동료들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밤을 새우면서 서로의 글을, 서로의 ‘챔질’을 독려하며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서로의 낚시대가 되고, 낚시바늘이 되어 주는 동안 우리는 진정 챔피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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