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며 기대함

by 오선희

똑같은 겨울인데, 12월과 1월은 그 느낌이 다르다. 찬바람을 맞을 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것도 똑같고, 간밤에 눈이 내려 나무가 하얗게 되는 것도 똑같지만, 12월의 느낌과 1월의 느낌은 분명 다르다. 12월은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웬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내년으로 미루게 되면서, 마음이 다소 느슨해진다. 그런데 1월은 뭔가를 당장이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는, 느슨하지 않고 아주 팽팽한 상태가 된다. 좀 더 긴장하게 된달까.


또한 12월은 추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느낌이라, 점점 더 추워질 일만 생각하게 되지만, 1월은 추위의 절정을 지나 봄으로 향해가는 느낌이라, 점점 더 따뜻해질 일만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가, 같은 기온인데도 1월의 겨울은 좀 따뜻한 느낌마저 든다. 기대라는 건 이런 거다. 아직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상황이 일어난 것처럼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도 좀 다르다. 12월의 눈은 꽁꽁 언 얼음과 같다면, 1월의 눈은 햇빛에 반짝이며, 햇볕에 녹아 물방울을 똑똑똑 떨어뜨린다. 눈 사진을 아무거나 내 눈앞에 갖다 대면, 나는 그것이 12월의 눈인지, 1월의 눈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월에도 한파는 계속되고, 입춘 즈음엔 꽃샘추위도 오지만, 그래서 물리적으로 보면 추위는 똑같지만, 그냥 내 마음가짐이 좀 다르다. 좀 나아질 것을 기대해서 마음이 달라지는 건가 보다.


‘기대’는 한자어이지만, ‘기대’에 ‘다’를 붙이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고유어가 된다. ‘기대다’. ‘기대하다’와 ‘기대다’는 어원이 다르겠지만, 나는 무언가에 기대는 마음에서 기대하는 마음이 샘솟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눈 녹은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지는 것에 기대어, 곧 다가올 봄을 기대하게 되듯이 말이다.


내가 매번 놓지 않고 하는 일도 내가 기대는 일이고, 기대하는 일이다. 매주 수요일 글방 동료들과 함께 읽을 글을 완성하고, 그 완성을 위해 한 주간 문득 문득 머릿속으로 글감을 이리저리 이어 붙이고 문장을 만들어 글을 꾸려 보는 일. 이러한 글쓰기에 기대어 풍요로운 글방 모임과 더 나아질 내 삶을 기대한다. 글쓰기를 꾸준히 하니, 결국 ‘작가’로서의 삶을 기대하고 있지 않느냐 누군가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하면서 기대하는 삶은 비단 ‘작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글감의 소재로 종종 등장했던 나의 제자들을 떠올리며, 어린이 친화적인 삶을 꿈꾸게 되었고, 과거의 경험을 파고드는 과정 속에서는 잊고 살았던 상처를 발견해 치유하며 정신이 건강한 삶을 꿈꾸게 되었다. 또 과거의 어떠한 경험을 글에 담을 땐,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 인연에 기대어 ‘좋은 사람’이 뭘까,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좋은’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었다. 이렇게 글쓰기에 기대어 삶의 면면에 기대감이 차오를 수 있어 좋았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면, 그의 심장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온도가 전해지고, 냄새도 풍겨온다. 어떨 땐, 포옹보다 기대는 것이 더 좋은 나는, 내가 기대는 글이, 글쓰기가 더욱 단단해지길 바란다. 단단하지 않은 것에 기대면 다 같이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단단한 글쓰기에 기대어, 콩닥콩닥 살아 숨 쉬는 내 글과 동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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