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났다. 이번 연휴는 길지도 않았기에,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연휴는 원래 짧아. 연휴 마지막 날, ‘뭐했다고 벌써 연휴가 끝나’라고 말하게 될 거야. 그러니 절대 실망하지 않게 될 거야. 이렇게 짧을 거 알고 시작한 거니까’라고 말이다. 알고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면 실망감이나 허탈감이 줄어드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길게 이어지던 일정 가운데 잠깐의 틈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틈’은 좋은 의미로도 쓰이는구나 싶다. 흔히 인간관계 속에서 사이가 좋지 않아졌을 때,그 사람과 나의 사이에 틈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이땐 ‘틈’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이겠지만, 연휴와 같은 여유나 쉼의 의미로도 ‘틈’을 쓰게 된다면 긍정적인 말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시인 복효근은 그의 시 <틈, 사이>에서 ‘하나 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 수많은 실금의 틈, 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약간의 틈, 거리는 존재해야 더욱 완성된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버름하다’는 ‘물건의 틈이 꼭 맞지 않고 조금 벌어져 있다.’ 혹은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 사이가 뜨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의미를 보면, ‘틈’은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인 듯하지만, 이 안에서 나는 내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기회를 얻었다. 물건의 틈이 꼭 맞지 않으면 물건 안에 있는 내용물이 흘러 나올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 사이에서도 그 마음이 잘 맞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이 흘러나오게 될 거다. 조직 속에서 여러 성향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나의 의견에 무조건 찬성을 하는 사람, 그러니까 매번 의견 일치를 이루는 사람보다는 적재적소에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며 나와는 다른 의견을 자신있게 제시하는 사람이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알아야, 그에 맞게 내 입장도 정리할 수 있고, 나머지 일들도 함께 잘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의견이 맞지 않아 마음이 상하고, 그래서 버름한 사이가 되어도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약간의 틈이 그들을 버름하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버름하다’라는 단어를 만나는 순간, ‘벌름벌름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그 말이 떠오르면서 내 콧구멍도 벌름벌름해졌다. 콧구멍도 살과 살의 ‘틈’이라고 본다면 이 단어 또한 ‘버름하다’라는 말과 연결짓기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콧구멍에 바람이나 집어 넣자고 생각했었다. 가까운 곳에 여행을 떠나 그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일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기로, 함께 간 사람과 약속했다. 일 얘기를 꺼내는 순간,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 어쩌고 하는 장대한 계획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순간 꿀밤을 맞기로 했다. 그럼 가서 무슨 얘기를 하냐는 물음에, 그냥 실없는 얘기나 하자고, 할 얘기 없으면 길가에 있는 간판이나 읽자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내가 너무 하찮아서 웃음을 참느라 또 콧구멍이 벌름벌름했다. 콧구멍에 바람을 집어 넣는 여유, 그것은 내 일상에 작은 틈이 생겨났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상에 잠시 틈이 생겼을 때, 혹은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의 관계가 버름해졌을 때, 그때는 잠시 그 틈으로 나를 들여다보거나 상대의 마음을 알아보는 시간으로 삼아 볼 것을 추천한다. 때론 콧구멍이 벌름거릴 하찮고 우스운 상황에 자신을 둬 보는 것도 좋다. 연휴가 되면 오래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이 모이게 되는데, 그때 제일 많이 싸우고, 감정 상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가장 친밀한 가족들 사이에도 어느 정도 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 버름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