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선희 Feb 08. 2024

해끔하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항상 새까매서 세수를 해도 세수하고 오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뭔가 꼬질꼬질해 보여서 까만 내 피부가 참 맘에 안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던가. 이사 준비가 한창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포장 이사 같은 것도 없었기에, 큰 상자 각각에 짐을 따로 따로 넣어 테이프를 붙여 두고, 그 위에 누구의 것인지 매직으로 적어 두었었다. 아빠는 내 짐만 따로 담아둔 상자에 ‘깜댕이’라고 적었다. 굳이 내 앞에 와서는 매직으로 ‘깜댕이’ 세 글자를 적고,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던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얼굴이 까맣기만 하면 그나마 괜찮은데, 난 얼굴에 여드름도 엄청 많았다. 그래서 늘 미백, 여드름 치료에 관심이 많았다. 아직까지도 나는 피곤하기만 하면 턱 주변에 뾰루지가 뾱! 화장이라도 잘 안 지우고 잔 다음 날은 못 생겨 보이게 코 옆 오서방 부위에 뾰루지가 뾱! 하고 올라왔다. 커버 메이크업, 컨실러에도 어마어마한 돈을 썼다.


그래서 그런가, 뽀얀 얼굴의 그가 좋았다. 20대의 나는 영어 학원에서 꼬마들의 파닉스를 가르치며 살고 있었다. 그 학원은 어학원이라 원어민 선생님이 꼭 한 명은 채용되었어야 했는데, 원어민 선생님의 비자 문제로 한 달 정도 유학생 선생님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맞다, 그 유학생 선생님이 뽀얀 ‘그’였다. 하늘색 셔츠를 입고 한쪽으로 가방을 걸쳐메고는,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한 채 수줍게 인사하는데 얼굴이 뽀얘서 눈길이 갔다. 내가 좋아해야만 연애가 성사되었던 나는 그때부터 그 사람의 한국 이름도, 나이도 몰랐지만, 계속 만나자고 했다.


그는 한국인이었지만, 원어민 선생님 대신 온 입장이었기에 학원에서는 원어민인 것처럼 영어만 써야 했다. 그때 난 그가 정말 한국어는 모르는 줄 알고,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걸었다.

“웨얼 두 유 리브?”

“커언대입쿠”

나중에서야 그가 한국어 완전 잘하는데, 못하는 척했고,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연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애하는 중에도 건대입구만 지나가면 그 킹받는, 어눌한 한국어말투가 어찌나 생각나던지, 생각날 때마다 화풀이를 했다. 한국에 잠깐 있다가 다시 떠나야 하는 유학생 신분이었던 그를 나는 눌러 앉혔다. 무슨 패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와 함께 하고 싶어서 자신 있게 가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7년을 더 만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9년이나 지났다.


그는 여전히 하얗고, 두툼해져서 그런지 더 백곰 같아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냐고 물어봐 주고, 내 밥과 낮잠을 챙겨주는 다정한 남편이다. 내 삶에서, 그를 만난 것은 참 빛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안정을 찾은 나는 새로운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 내 원동력은 그였다.


‘해끔하다’는 ‘조금 하얗고 깨끗하다’라는 뜻이다. ‘해’에 스위치가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 ‘해’의 스위치를 꺼도 그 자체로 발광하는 존재들은 밝게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내 곁에 있는 하얀 이 아이도 깜깜했던 내 삶에, ‘해 끔’ 모드였던 삶에, 하얗고 빛나는 모습으로 찾아와 준 사람이었다. ‘해끔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렇게 또 내 머리에 잘 남아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하얗고 다정한 그는 해끔하게 내 곁에 있다. 앞으로의 내 삶도 그가 환하게 만들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바장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