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저 여행자에 불과했다.

방콕의 관광지를 바라보는 시선

by 자유영혼 깡미

방콕에 처음 도착한 나는 한국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새로운 나라를 구경한다는 것에 무척 설레어 있었어. 어떤 모습이 한국과 다를지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야. 도착한 첫날부터 나의 다리를 부지런히 혹사시키기 시작했어. 카오산로드 근처에 있는 곳부터 나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시작했지!


카오산 로드 근처를 방람푸 일대라 칭하며 주요 사원과 여러 상징물들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태국스러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 한국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화려한 사원들을 보고 있다 보면 우리나라 절이 얼마만큼 소박한 절제미를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한 장소, 한 장소 방문할 때마다 눈이 즐거워지고 나의 사진기는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게 열일을 하고 있었어. 아름답고 새롭기만 한 건축물 또는 내가 보는 순간의 찰나를 놓칠까 싶어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던 거야. 더구나 가장 무더웠던 시기의 태국 더위를 느끼며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건 극한 도전과 같은 일이었지. 하지만 이 배낭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계속 사진기와 씨름하고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어.


왜냐하면 난 이 나라에 처음으로 방문한 이방인이자 백패커, 여행자이기 때문이지.


거대하고 화려하기만 한 왕궁의 모습을 사진기 안에 다 담지 못함에

계속 한탄하며 의미 없는 셔터질만 계속하고 있었던 나.

하지만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나머지 왕궁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 있었어.

결국 사진은 연상의 일부분일 뿐, 전부가 될 순 없어.



그래서 난 방콕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인 왓포, 왓 프라 깨우, 왕궁, 왓 아룬, 두싯 정원, 왓 사켓, 왓 트라이 밋, 차이나타운, 방콕 국립 박물관, 부적 시장 등등 안 가본 곳을 찾는 게 더 힘든 일이 되어버렸어.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처음 방문한 나라를 여행한다면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 나라에 언제 또 오게 될지 모르기도 하고 사진이 아니라면(요즘에는 유튜브 때문에 +동영상도 한몫할 듯함) 찰나의 순간을 머릿속에만 저장하기에는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지.


태국이라는 나라에 세 번쯤 가니까 드는 생각이,

'굳이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아도, 발이 이끄는 곳이 관광지가 되는구나...'

'사진은 꼭 필요할 때만 찍고 나머지 시간에는 여유를 즐겨도 되는구나...'

'사진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거구나...'

'지금 이 순간을 즐겨도 되는 거구나...'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또 올 수 있는 나라이구나...'

'이번에 못 가봤다면 다음에 또 와서 가면 되는구나...'


왕궁 사진만 수백 장을 찍었던 그때...

폴더 안의 사진 개수를 보고 있자면 셀렉에 한숨만 푹푹 나오는 건 나뿐일까?


여행 사진들로 넘쳐나는 외장하드는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여행자들과는 다른 여행자이자 백패커라고 자신하며 여행을 했었어. 왜냐하면 여자 혼자 배낭여행하는 일이 흔치 않았고, 스스로 히피라 칭하며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야'라고 나에게 주문을 걸고 있었거든. 하지만 생각하는 모습만 히피고 행동하는 모습은 여느 관광객과 똑같이 사진에 집착하고 있었고 그러느라 나만의 여유를 즐기면서 여행하지 못했다는 거야. 여행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마음이 조급해져 내가 계획한 빡빡한 일정을 다 채우기 위해 몸을 더 혹사시키고 있었던 게 다반사였거든. 나의 머리와 옷은 항상 땀에 절어 있었고, 마치 그것이 '오늘 열심히 돌아다녔구나'라며 스스로에게 주는 훈장인 것 마냥 뿌듯해했었어. 너무 힘들어 잠시라도 그늘에 앉아서 쉴 때면 나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 큰 잘못인 것 마냥 '빨리 움직이라고!'버럭 화를 내기도 했었지.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여유가 없는 여행을 하며 돌아온 건 한 장 한 장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비슷한 수많은 사진들과 다 똑같이 생겼다라고만 인지한 사원의 모습들,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아주 얕은 지식들 뿐...


그래서 내가 감히 이야기하자면, 하루에 하나의 일정만 계획하고 그 이외의 일정은 너만의 시간으로 채워보길 바라. 굳이 카페가 아니더라도 관광지 어느 그늘진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현지인, 관광객을 구경해도 좋아. 사원에 쓰여 있는 설명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태국의 역사적 의미를 상세히 알아가는 것도 좋아. 사원을 둘러보며 이 사원에는 불상이 대체 몇 개인지 개수를 세워보는 것도 좋아. 사원의 높이는 대략 몇 미터인지 눈으로 길이를 재 보는 것도 좋아. 지나가다 노점 식당이 보이면 주저 말고 맛을 경험해 보는 대담함을 가져보는 것도 좋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게스트 하우스에 박혀 있는 것도 좋아. 카오산 로드에서 하루를 온종일 보내는 것도 좋아.


그렇게 나는 이제야 진짜 여행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여행자가 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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