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연 2화
나는 이상하게 지하철에서 잘 운다. 샤워를 할 때처럼, 지하철에 타면 적당한 소음과 일정 정도의 진동과 복작거림이 합해져서 생각이 깊어지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고 생각이 거듭되면 결국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손수건이라도 챙겨 나온 날이면 다행이지만 길에서 건네 받은 광고지 붙은 티슈조차 없는 날이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지하철을 타고 가는 거다. 정말 이상한 버릇이고 성가시기 짝이 없는데, 최근에 개인사로 울었던 때는 대부분 장소가 지하철이었다.
본격적으로 지하철에서 울기 시작한 때는 채용전환형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나를 불합격시켰을 때였다. 일하는 동안 친해진 동료들은 채용전환이 되어서 기뻐하고 그 소식을 단체카톡방에서 주고받는데 나 혼자 아무 말도 못하고 축하하고 다들 잘 되면 좋겠다고 말한 뒤, 나는 제법 태연한 얼굴을 하고 집에 가고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동료들에 비해 성적도 안 좋고 해 놓은 것도 많이 없고 인턴 중에 성과도 뚜렷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같이 있었는데,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도 불합격 사실을 알리고 위로를 받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위로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이런 일에도 익숙해져야 하지 않겠냐고 어른인 척을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불합격 소식이 철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핸드폰에서 눈을 못 뗀 건 물론이다. 핸드폰에서 눈을 못 떼고 친구들과 놀다가(친구들 미안)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지하철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가듯 한동안 인턴 생활을 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특히 마지막 날 친해진 동료들끼리 다 같이 모여 우리 꼭 정직원이 돼서 다시 돌아오자며 단체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향기로웠다. 그러나 그 기억이 향기로우면 뭐 하는가. 다시 돌아갈 사람은 내가 아닌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눈에 눈물이 고였고 나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거기서 그만 울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이 인턴 기간 동안 고생한 것까지 이르자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인턴 기간 동안에 나는 심한 각막염을 앓았다. 애초에 이것저것 염증 부자인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온몸 이곳저곳에 염증이 도지는데,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다 보니 이번 부위는 눈이었다. 일을 하던 도중에 급하게 안과까지 다녀 왔는데 의사가 눈을 보고 대뜸 하는 말이 눈에 염증이 너무 심하다며 한동안 쉬라고 했다. 그러나 인턴 기간 동안에 쉬면, 내가 맡은 일은 누가 해준단 말인가?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에 약을 넣어 가며 참고 할 일을 했는데 눈이 너무 시리고 아파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해야 할 때면 아예 눈을 반쯤 감고 보았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눈은 겨우 차도를 보였다.
불안해서 잠을 못 잔 건 물론이었다.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수면제를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음에도 강력한 불안 앞에서 이 약들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아침 알람이 울리면 또 일어나 너무 졸려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출근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공식적인 식사 자리였는데, 내가 스몰톡에 그렇게 재능이 없는지 이제야 알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가 스몰톡에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평가받는 장에서 어떤 스몰톡 소재를 찾아야 할지 잘 알지 못했던 거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식사를 하고 나면 나는 진이 빠지기 일쑤였고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사회성이 없는가에 대한 고찰에 빠졌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휙휙 지나가며 나를 울렸다. 눈물이 줄줄 나는 바람에 무릎에 방울방울 물방울이 떨어졌고 코를 풀어야 하는데 가방에 있는 게 없었다. 다행히 이 잡듯 뒤지니 예전에 받았던 물티슈가 나왔다. 그걸로 코를 풀자 파운데이션이 묻어났다. 베이지색으로 물든 물티슈를 보면서 나는 울었다. 한참 울었다.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가치 없는 삶을 그만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그 후에도 지하철에서 참 많이도 울었다.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가, 통화가 너무 짧고 그 사람이 너무 그리워서 또르륵 또르륵 울기도 했고,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적성에 안 맞아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도 했다.
신기한 건 그렇게 우는데도 나를 쳐다보거나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거다. 지하철이란 그런 점에서 재미있는 공간인지 모른다. 모두가 함께하고 있으면서 아무도 동행하지 않는 장이니까. 눈물을 쏟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하철에서 우는 건 혼자 울기엔 너무 쓸쓸하고 같이 울기엔 너무 부끄럽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우는 건 어쨌든 조금 창피하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지하철에서 우는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이 휴지나 손수건을 도저히 못 찾는 것 같을 때 빼고는- 도와주려 하지 말고 슬쩍 시선을 돌려 주자. 사람은 혼자 힘으로 울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