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연 5화
2021년도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새해가 된다고 해서 딱히 상전벽해할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날짜라는 것은 사람들이 계산하기 쉽게 만들어 놓은 체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어쨌든 새해가 다가오면 치열하게 보낸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올해 연말은 유달리 우울했다. 항상 뭔가 성취하고 어딘가로 나아가 있던 내 대부분의 연말과는 달리 이번 연말은 별로 해 놓은 게 없어서 더욱 그랬다. 그렇게 성취지향적인 인간이 아님에도 새해를 맞는 순간에 "작년에는 이걸 해냈다!"고 외칠 수 없으면 그만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그래서 한동안 꽤 풀이 죽어 있었다. 자랑할 것도 내보일 것도 없이 2022년이 시작되는 데에 마음이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문인지 몰라도 약한 몸이 탈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어느 때는 글을 쓰는 것조차 할 수 없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 진정으로 한 해를 돌아보면 내가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됐음을 깨닫는다. 스무살 무렵의 나는 애인이 나에게 창피를 준다고 해도 헤어지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자꾸만 눈치를 보게 만들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애인을 두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돌아서서,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스물한 살 무렵의 나는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었다. 너무 머리가 아파서 하루에 타이레놀을 권장량 이상 먹으면서도 쉬거나 '쉬게 해달라'고 말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자진해서 쉴 줄 알게 되었고, 덜 힘든 길과 더 힘든 길이 있다면 덜 힘든 길을 택하는 것이 결코 비겁하지 않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나는 덜 고생하고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내가 조금 어색하게 굴어도,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해도, 주저하다가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도, 주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행동해도 괜찮다. 왜냐면 그게 나고, 나는 나로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미숙한 스스로를 잘 달래가며 살아야 한다.
한때 성장이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을 때가 있었다. '한때'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까운 시기다. 사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의 2021년은 성장 없는 한 해, 메마른 1년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알게 되었다. 자우림의 김윤아는 '열일곱 또는 열 셋의 나를 안고 조곤조곤 말할 수 있는' 자신을 성장한 자아로 상정했듯이, 스물 또는 스물다섯의 나를 안고 힘들었냐고 물어볼 수 있는 나 자신은 성장한 나라는 것을.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스물 또는 스물다섯의 나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네가 바라던 모든 게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멋진 내가 되지도 못했지만, 무사히 잘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네가 겪었던 온갖 심각한 문제들을 글로 다듬어 쓸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고.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의 문제들이 있지만 그것도 차근차근 살펴보고 있다고. 그러니까 겁 먹지 말고 자라나라고.
사람은 죽지 않는 한 계속 자라난다고 생각한다. 자라남의 끝에는 조금 바뀐 내가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는 사람의 성격은 스무살 이후로 바뀌지 않는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무언가를 정면에서가 아니라 비스듬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 내가 있다.
내 책상에 붙여놓은 말처럼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말기'. 미운 짓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배워가는 과정인 거니까. 몇 번을 밀쳐져서 포기하든 포기하지 않든 나는 나인채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3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음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