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연 11화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산다는 건 무엇일까. 살면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에게 사는 것은 자꾸만 0을 향해 수렴해가는 통장 잔고를 붙잡고 비지땀을 흘리는 것과 비슷했다. 어릴 적 나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를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자랐다.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생일날 어쩌다 친척들에게 용돈을 받는다고 해도 그 돈은 모두 빚을 갚는 데 쓰였다. 빚은 존재하는 한 이자 명목으로 돈을 끝없이 좀먹는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잔인한 실체다. 그런 것들을 누가 내 귓가에 속삭여 준 것도 아니련만 나는 버릇처럼 생각하고 떠올리며 살았다.
아주 어릴 때는 피아노 배우기를 포기했었다. 비록 음악적 감각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을지언정 나는 피아노 치기를 좋아했지만 우리 집은 피아노 학원비조차 대기가 어려웠다. 어릴 때는 그게 정말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분하고 슬펐는데 크면서는 점점 아무렇지 않아졌다. 돈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앞서 돈 걱정을 하고, 돈이 없음을 이유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 그런 것에 점점 화를 내지도 않게 되었다. 그런 것에 일일이 화를 내면서는 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타고난 성정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소박한 성격은 아니라서 항상 까닭 모를 허전함을 달고 살았다. 아니, '까닭 모를'이 아니지, 돈이 없어서 생기는 허전함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항상 이중의 감정을 유발한다. 기쁠 때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고 슬플 때도 순수하게 슬퍼할 수 없다. 어느날 글을 쓰다가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는 여느 사람이 누리지 못할 행운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그 행운이라 함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한 일에만 온전히 집중해서는 결코 내 앞가림을 하며 살 수 없을거라는 생각에 곧바로 실망했다. 내가 글에 엄청난 재능이 있어서 어마어마한 작품을 내놓고 그 작품이 대단히 잘 팔린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사실 내가 글에 그렇게까지 재능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나는 그냥 글 쓰는 걸 좋아할 뿐이다. 글을 써서 먹고 살 팔자 같은 건 내 앞길에 없는 것 같다.
슬플 때도 마찬가지다. 몸이 너무 아프고 고단할 때 나는 병원에 가기에 앞서 병원비가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아플 때면 어떻게든 이 밤을 견뎌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아파서 죽어야 할 만큼 돈이 없는 것은 아님에도, 그놈의 '돈 걱정'이라는 것이 발 디디기를 주저하게 하는 것이다. 걱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 어깨를 잡아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계산을 하고 약국에 가서 약까지 챙겨 돌아오면 왜 또 아파서 이렇게 돈을 무익한 데에 쓰고 있나 하는 회한이 든다. 비유하자면 나는 매 발걸음마다 신발 속에 돈 걱정이라는 이름의 돌멩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양말이 찢어질 정도나 발에 피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발톱에 멍이 서서히 들어가고 걸음걸이가 느려질 만큼 신경에 거슬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돌멩이가 무서워 뛰지 못할 때도 분명히 존재하는 셈이다.
신발을 벗고 탁, 털어 그 돌멩이를 내던져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돈 걱정이란 그런 게 아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은연중에 부모님이 돈 걱정을 하는 것을 보며 자란 사람은 마치 혈액에 각인된 것처럼 돈 걱정을 한다. 가장 서글픈 점은, 돈 걱정을 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이 그 걱정만큼의 크기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다. 그림도 배우고 싶고 글도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고 책도 잔뜩 사고 싶고 음반도 사고 싶고 콘서트도 가고 싶다. 그러나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당장 내일 먹고 살 것도 없어질 것이다.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돈 걱정보다 더 심하게 발에 채이는 게 생겨 버렸지만, 우울증 증세도 꾹꾹 참고(물론 이것은 정신과 치료의 덕이다) 먹고 살 일을 하러 나가게 만들 만큼 돈 걱정은 거세다. 이렇게 쓰다 보니 돈 걱정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동력인가 싶은 동시에,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물귀신인가 싶다.
돈 걱정을 안 하고 사는 아이로 자랐다면, 나는 조금 더 밝고 무사한 아이로 컸을까? 흠결이 없는 사람으로 자랐을까? 나에게 너무 많은 결함을 느끼는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